사상 최대 순익 낸 은행들, 사회공헌액 비율은 작년 절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은행들이 사회공헌에 쓴 돈은 줄였다. 사진은 4월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 모습. 왼쪽부터 어윤대 KB금융 회장,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김석동 금융위원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중앙포토]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4일 서울 태평로 본점에서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 도전’ 발대식을 했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3억6300만원의 기부금도 직접 전달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23일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을 방문해 장애가 있는 저소득 가정 어린이의 재활·자립을 지원할 센터 건립기금으로 10억원을 기부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겸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도 같은 날 서울 면목시장을 찾아 전통시장 소액대출자금 66억원을 추가 지원키로 약속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을 방문해 “200억원 규모의 우리 다문화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다문화 가정 2세 채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지난해 대부분 지주사가 회장 선임 문제로 곤욕을 치른 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관심도 무척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은행 밖에선 이런 관심을 잘 느낄 수 없다. 회장들의 행보와는 다르게 은행들이 실제로 사회공헌에 쓰는 돈을 줄였기 때문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18개 은행의 사회공헌 금액은 모두 256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지원금액(5923억원)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규모다. 은행들은 올 상반기에 줄줄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6개월간 번 돈이 지난 한 해(9조4000억원)보다 많은 9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순이익 중 사회공헌에 쓴 돈의 비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9년 7.52%이던 게 2010년 6.3%, 올 상반기 2.59%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회공헌 활동이 연말에 많이 이뤄져 상반기에는 한 해 지원액의 30~40%만이 집행된다”며 “미소금융 지원을 두 배로 늘리기로 하는 등 사회공헌을 강화하고 있어 연간으론 지난해 수준을 웃돌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미소금융 지원을 늘리다 보니 순수 사회공헌 지원이 오히려 줄어드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미소금융을 뺀 순수 사회공헌 활동에 은행들이 쓴 돈은 2008년 4833억원에서 지난해 3484억원으로 감소했다. 올 상반기 지원액도 1436억원에 그쳤다. “쓸 돈은 한정돼 있는데 정부가 하라는 걸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게 은행들의 말이다.

 사회공헌으로 분류하기 애매한 항목을 집어넣는 ‘실적 부풀리기’도 여전하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학술·교육 분야에 269억원을 지원했다고 보고했다. 이 중 200억원은 유명 사립대들에 발전기금으로 전달됐다. 하지만 일부 은행은 이런 돈을 사회공헌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대학 자금을 유치하려는 마케팅 목적의 지출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올 상반기 문화·스포츠·예술 분야에 지원한 17억원에 축구단과 여자 프로농구단 운영비 수억원을 포함시켰다. VIP 고객을 초청해 벌이는 문화행사 비용을 사회공헌 금액에 집어넣어 보고한 곳도 있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은행장 간담회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제대로 하라”고 촉구했다. 불우이웃돕기 식으로 무계획적으로 이뤄지는 사회공헌 활동을 체계화하고, 은행의 성격에 맞는 사회공헌 활동 브랜드를 도입하라는 얘기다.

 나현철·김혜미 기자

◆금융감독원 사회공헌 활동 기준=금융감독원은 2010년 3월 ‘은행 사회공헌활동 공시 기준 강화’ 지침을 발표했다. 은행들이 논란 있는 항목을 사회공헌 활동에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침의 핵심은 영업·캠페인 등 직접적인 마케팅 비용, 자립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문화·예술·스포츠 분야 후원금은 사회공헌 활동 금액에 넣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스포츠단 운영비와 영업 목적의 발전기금 등 논란 있는 항목을 여전히 실적에 넣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