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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꾸러기 지방의원들의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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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대석
사회부문 차장

최근 지방의회 의원들의 일그러진 행태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공무원들에 대한 막말이나 고성은 다반사고 뇌물과 도박, 동료 폭행 사건까지 곳곳에서 낯 뜨겁고 민망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 화순군의회 의원들은 지난달 하순 퇴근 직전 군청 사무실에 들어가 “직원 인사를 협의 없이 멋대로 한다”며 10여 분간 소동을 피웠다. 의원들은 인사 담당 과장에게 “XX놈, 자리를 없애 버리겠다” “의회를 개X으로 본다”는 폭언을 퍼붓고, 직원들에게 의자까지 집어던졌다. 마침 군청에 들렀다 현장을 지켜본 한 주민은 “조폭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저들을 주민 대표 ‘선량’이라고 뽑았다는 게 너무나 부끄럽다”고 말했다.

 전남도의원·여수시의원 등 11명은 이달 초 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오현섭 전 여수시장으로부터 6·2 지방선거에서 지지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00만~1000만원씩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11월에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가 되었지만, 이들의 통장으로는 지난 10개월간 매월 300만원 가까이 되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갔다. 이 돈은 대법에서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 계속 지급된다.

 전북 군산시의원들도 꼴불견 행태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업무보고 회의장에서 남성의원과 여성의원이 “돈놀이” “서방질” “화냥질” 등 일반인도 입에 담기 힘든 비속어를 써가며 삿대질을 벌였다. 군산시의원들은 지난 2월, 6월 등 두 차례나 의원들끼리 폭력을 주고받았다. 물병이 날아가고 주먹이 오가는가 하면, 식사 자리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식기가 깨지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지방자치가 이 땅에서 시작된 지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지방의원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지자체의 살림살이를 살피고 세금 낭비를 꼼꼼히 감시하라고 지방의회에 막강한 권력을 쥐어준 게 주민들이다. 그렇지만 지방의원들의 자정능력은 나아진 게 없다. 대부분 지방의회마다 의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윤리강령을 두고 있다. 하지만 ‘솜방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느슨하다. 이러니 비슷한 구태가 재발되는 것이다. 잡초를 방치하면 자칫 꽃밭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지방의원들의 역겨운 막장드라마 상영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이제 지역주민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우선 시민단체가 앞장서 의회가 스스로 잡초를 뽑아내도록 압박해야 한다. 필요하면 주민소환 운동도 적극 펼쳐야 한다. 현재처럼 “자진사퇴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나오게 둬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부여받은 막강한 권력일수록 엄격한 룰과 확실한 징계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뇌물로 구속되어도, 공무원들의 머리채를 잡은 뒤에도, 물건을 훔친 뒤에도 의원 배지를 달고 행세하는 저질 의원들이 없어지고, ‘봉급 도둑질 한다’는 손가락질도 사라진다. 지방의원들이 바로서야 이 나라 풀뿌리 민주주의가 싱싱하게 살아난다.

장대석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