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군, 트리폴리 떠나 시르테 퇴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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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시민군이 23일 무아마르 카다피의 트리폴리 거점인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를 점령한 뒤 환호하고 있다. 나토도 카다피군을 폭격해 시민군의 요새 장악을 도왔다. 카다피군은 요새에서 퇴각해 카다피 고향이 있는 시르테 방향으로 도망간 것으로 전해졌다. TV 캡처 화면. [트리폴리 AP=연합뉴스]


리비아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 정부군이 23일 수도 트리폴리의 최후 거점인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도 포기했다. <관계기사 4, 5, 14, 16면>

시민군은 카다피 군으로부터 탈취한 탱크와 중화기를 동원해 요새를 공격하며 이날 요새를 장악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전폭기를 동원해 요새를 맹폭했다. 카다피 군은 탱크 등으로 맞섰으나 시 외곽의 시민군까지 합세하면서 전세가 기울었다. 시민군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며 승리를 자축했다. 요새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포격과 총격 소리가 이어지며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알자지라 방송은 카다피 군이 요새에서 퇴각해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360㎞ 떨어진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와 남부 알자프라 방향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시민군은 시르테로 이어지는 교통 요충지인 석유도시 라스라누프도 장악했다. 이날 트리폴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서 서쪽으로 2㎞ 떨어진 시내 가르가레시 지역에서는 기자가 서 있는 바로 옆까지 총알이 날아왔다.

요새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총을 든 카다피 군이 시민군의 접근을 막았다. 건물 위에는 저격수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전날까지 시민군이 승리를 자축했던 그린광장으로 가는 도로 주변에도 저격수가 배치되면서 주민들의 광장 출입이 끊겼다. 시민군과 카다피 군은 시내에서 로켓포와 중화기·소형화기뿐만 아니라 돌까지 동원해 치열하게 싸웠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트리폴리 도심 이슬람 사원에서는 “알라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구호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 나왔다.

오바마

 앞서 카다피 측은 결사 항전을 다짐했다. 전날 시민군 측이 생포했다고 발표했던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은 23일 카다피 군이 장악하고 있는 릭소스 호텔에서 CNN·BBC 등 외신 기자들과 만나 “트리폴리는 우리가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아버지는 안전하며 트리폴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을 트럭에 태우고 카다피 군이 장악하고 있는 호텔 주변 지역과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 내부를 보여줬다. 국내외에 자신의 건재를 알림으로써 지지자들의 충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날 시민군에 체포됐던 카다피의 장남 무함마드(41)도 카다피 군의 도움으로 탈출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시르테에서는 카다피 군이 시민군이 장악한 동부 도시 미스라타를 향해 스커드 지대지 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고 CNN은 전했다.

 시민군은 카다피 체포에 힘을 쏟고 있다. 시민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 무스타파 압둘 잘릴 위원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진정한 승리의 순간은 카다피를 생포하는 때”라며 “카다피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 사회는 ‘포스트 카다피’ 논의에 착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2일 “카다피 정권이 이제 분명히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며 “미국은 향후 리비아 권력 이양 과정에서 친구이자 동반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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