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전직 대통령 문화의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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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수한
전 국회의장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신생국가들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유일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우리의 자랑스러운 현대사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하지 않으냐는 아쉬움을 느낀다.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값진 성취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특히 필자가 정치인으로서 경험했던 민주화의 길은 형극의 길이었다. 오늘날 자유롭게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은 철옹성 같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이미 잊고 있다. 당시를 경험하지 못했던 대다수 국민들은 까마득한 과거인 듯 무심하다. 그러나 독재의 억압에 맞서 저항한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필자가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으로서 지켜본 작은 감동이다. 남쪽 바다 끝자락 섬인 거제도엔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 있는 생가를 기부해 지난해 6월 18일 개관했다. 놀라운 것은 국토 남단 외딴 포구에 하루 평균 3000여 명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개관 이후 14개월간 110만 명이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땅의 민주화에 평생을 바친 투사다. 전쟁 직후인 1954년 25세 최연소 의원으로 3대 국회에 진출한 이래 늘 우리 헌정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9선 국회의원, 다섯 차례 야당 원내총무, 세 차례 제1야당 총재를 지냈다. 수난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투옥과 장기 가택연금, 목숨을 노린 초산 테러, 스스로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 등등.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93년 취임 직후 기세가 등등하던 군부의 사조직을 과감하게 타파함으로써 정치 군인의 뿌리를 잘랐다. 공직자 재산등록과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와 같은 조치들은 민주주의의 초석들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켜내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아직도 우리 현대사에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는 세력, 북한을 찬양하는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국가 원로로서 단호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알고자 남쪽 바다 끝 포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그래서 서울에도 김 전 대통령을 알리는 곳을 만들기로 했다. 작년 11월 김 전 대통령이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상도동 자택을 비롯해 전 재산을 김영삼민주센터에 증여했다. 증여 재산을 등기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재산 중 단 한 평의 땅도 그가 직접 산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랐다.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온 김 전 대통령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 재산마저 국민과 사회에 바친 것이다. 서울 상도동의 ‘김영삼대통령도서관’이 우리 현대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주고, 전직대통령 문화의 확산에 기여하도록 만들 것이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