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귀 알아듣는 ARS … 자동응답서비스 똑똑한 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긴 대기시간, 복잡한 버튼 조작법, 순식간에 휙 지나가 버리는 번호안내. 자동응답서비스(ARS)는 짜증 유발 서비스가 되기 일쑤다. 상담원 연결 버튼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게 숨어 있고, 버튼을 한번 잘못 누르면 ‘초기 메뉴’로 돌아가버린다. 가뜩이나 급해서 전화한 고객들은 속이 터진다. 고객의 짜증 지수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이 ARS서비스를 바꾸고 있다. 좀 더 똑똑하고 빠르면서 친절한 ARS로의 진화다.

 “말로 하는 ARS는 1번, 누르는 ARS는 2번입니다.”

 신한카드 콜센터로 전화하면 맨 처음 이런 안내가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 10일부터 고객이 원하는 걸 말하면 알아서 연결해 주는 대화형 ARS를 선보였다. 1번을 누른 뒤 “이번 달 결제대금” 또는 “결제대금이 얼마인가요”라고 말만 하면 곧바로 결제대금 안내로 연결된다. 안내를 듣다가 중간에 “그만”이라고 말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도 한다. 신한카드는 이번에 수억원을 들여 새롭게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사 담당자는 “터치폰 이용자나 연세 많은 고객은 버튼 누르는 것보다는 말로 하는 게 편하다”며 “도입 초기지만 전체 ARS 이용자의 20%가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도 이와 비슷한 음성인식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도입했다. 전화를 걸고 ‘냉장고’나 ‘노트북’처럼 제품명을 말하면 곧장 해당 메뉴로 연결해 준다.


 좀 더 빠른 서비스를 위해 안내순서를 바꾸는 기업도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달부터 전화를 걸면 곧바로 “상담원 연결은 0번”이란 멘트가 나오게 했다. 주로 맨 마지막에 두는 메뉴를 맨 앞으로 뺀 것이다. 덕분에 다른 시중은행들이 전화연결 뒤 23~25초 뒤에나 알려주던 상담원 연결 번호를 3초 만에 알 수 있다. 멘트 순서를 바꾸면 콜센터의 업무량 부담은 늘어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2009년 상담원 연결멘트를 맨 마지막에서 중간 정도로 바꾸고 나서 상담이 하루 평균 2700여 건 늘었다”며 “이번 변경으로도 업무량이 늘 걸로 보고 상담원 29명을 추가 채용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도 VIP등급 고객이 콜센터로 연결하면 ‘상담원 연결은 0번’이라는 메뉴가 맨 처음 나오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일반고객에겐 ‘사용요금 조회는 1번’이 가장 앞에 나온다.

 ARS가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복잡하고 정신 없는 ARS는 무용지물이다. 이들을 위한 친절한 서비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3월 ‘쉬운 말 서비스’를 도입했다. 텔레뱅킹 연결 뒤 7번을 누르면 금융용어를 쉬운 말로 바꿔 설명해 준다. “지금부터 신한은행 통장으로 돈을 보내기를 하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고 안내하는 식이다. 외환은행도 지난해 11월부터 ‘느린 말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쉽고 빠른 ARS는 방송통신위원회가 2009년 11월 만든 ARS 가이드라인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방통위 이재범 이용자보호과장은 “상담원 연결 안내번호를 숨기지 않고, 이용단계 수를 가급적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기업과 공공기관의 ARS 개선 실태를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자동응답서비스(ARS)=사용자가 전화로 접속하면 필요한 정보를 음성으로 들려 주는 서비스. 국내 은행들이 예금잔액조회 등을 위해 1989년 4월 처음 도입했다. 현재 전국에 있는 기업과 공공기관 콜센터는 2000여 곳, ARS 회선은 약 4만7000개에 달한다. 초기에는 음성을 자기드럼(magnetic drum)에 아날로그 형태로 기록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기억장치의 대용량화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해 합성음성에 의한 자동응답방식과 축적 음성을 활용하는 두 가지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ARS 기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소규모 기관이라면 직원 한 사람의 연봉 정도로 설치가 가능하므로 인력절감을 위해 많이 사용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