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소비자 설득하지 말고 호소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임홍준
오리콤 스포츠마케팅팀장

얼마 전 영국에서 열린 골프대회 디 오픈에서 43세의 노장 대런 클라크가 20번의 도전 끝에 우승 트로피 ‘클라레 저그(Claret Jug)’를 안았다. 이로 인해 후원업체인 테일러메이드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뒀다. 물론 스포츠 스타가 기업의 홍보 모델로 등장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스포츠 스타, 더 나아가 스포츠를 활용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스포츠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의 전쟁터가 아니라 기업들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기업은 왜 이처럼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쏟을까.

 『드림 소사이어티』를 쓴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꿈과 감성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경쟁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 이성에서 감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업은 이제 자사의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 소비자를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곧바로 소비자의 마음에 ‘호소’한다. “어때, 당기지 않아?”라고.

 이상적인 소비자는 냉정하다. 그런 소비자는 최대한 합리적인 자세로 제품을 비교해 보고 구입할 제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소비자는 그처럼 냉정하지 않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느낌’으로 제품을 고른다. 보는 순간 “바로 저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기업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은 바로 그런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고자 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이성의 저편에 있는 감성(感性), 냉정(冷靜)이라는 미덕 아래 억압돼 있던 열정, 그 열정이 한데 모여 분출되는 스포츠 현장만큼 기업을 널리 알리기에 좋은 장소는 없다.

 특히 골프는 마케팅 효과가 좋은 스포츠로 기업들이 늘 눈독을 들이는 종목 중 하나다. 오래 하는 경기여서 광고 노출시간이 길 뿐만 아니라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올해 유소연의 US여자오픈 우승이라는 쾌거는 비단 유소연의 것만이 아니었다. 모자와 유니폼에 새겨진 스폰서의 로고가 전 세계에 생중계됐으니 스폰서는 유소연의 우승으로 인해 상당한 광고 효과를 봤을 것이다.

 디 오픈의 공식 후원사 중 하나인 두산도 그렇다. 디 오픈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5000만 가구 이상이 시청했다. 또한 경기장을 방문한 약 25만 명 이상의 갤러리에게 두산을 알림으로써 750억원 이상의 광고 효과를 누린 것으로 분석됐다. 건설장비 중 하나인 다용도 카트(Utility Vehicle) 차량을 대회를 주관하는 영국 왕실골프협회(R&A)에 제공해 대회장 안팎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등 다각도의 마케팅 활동도 펼쳤다. 이러한 마케팅 활동은 최근 해외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며 유럽과 미주 지역에 진출한 두산의 브랜드 인지도(認知度)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소비자의 변화는 시대 변화의 결과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못하든 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스포츠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고 있는 기업들의 소리 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스포츠는 열정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열정을 드러내는 순간을 파고들어 자신들의 로고를 새겨두고 빠져나온다. 냉정에서 열정으로! 마케팅은 변하고 있다.

임홍준 오리콤 스포츠마케팅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