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번 베팅 4455억 → 6633억 끝이 안 보이는 주파수 경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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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2일 오후 3시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회의를 주재 중인 이형희 대외협력부문장의 휴대전화가 ‘딩동’ 울렸다. 문자메시지(SMS)가 온 것이다. 내용은 간결했다.

 ‘15시 현재 38라운드 종료, KT가 6438억원 써냄’.

 이 회사 31층에 차려진 ‘주파수 경매 상황실’에서 보낸 것이다. 17일 국내 최초의 주파수 경매가 시작된 이래 이 부문장은 유사한 SMS를 하루 열 차례 이상 받고 있다. 벨이 울린다는 건 입찰가가 전 라운드보다 1% 이상 높아졌다는 뜻이다. ‘딩동’ 벨소리 한 번에 입찰 액수가 45억~60억원씩 더 불어난 셈이다. 이 부문장은 “벨이 울릴 때마다 흠칫 놀란다. 예상한 일이지만 탄식이 절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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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각, 서울 서초동 사옥에 마련된 KT 상황실에서 수화기를 든 이경수 유무선네트워크전략본부장의 목소리 또한 밝지 않았다. 경매 현장인 경기도 분당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서 직접 액수를 써내고 있는 안창용 상무의 중간 보고 전화다. 이 본부장은 “경매가 시작된 이래 발 뻗고 잠을 잔 날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경매 역시 오후 5시쯤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또다시 연장전에 돌입했다.

 이날 최종 입찰가는 SK텔레콤이 써낸 6633억원. 경매 회차만 벌써 41라운드에 이른다. 이형희 부문장과 이경수 본부장은 23일에도 피 말리는 수싸움을 벌여야 한다.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이석채 KT 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이 짊어진 부담이야 말할 것 없다. 경매 현장이 최전선, 상황실이 전방 막사라면 이 회장과 하 사장은 작전사령부의 총지휘관인 셈이다. 이처럼 17일 주파수 경매가 시작된 이래 SK텔레콤과 KT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에 내놓은 4세대(4G) 네트워크용 주파수는 모두 3종. 그중 2.1㎓(기가헤르츠)의 20㎒(메가헤르츠) 대역폭은 사전에 단독 입찰자로 정해진 LG유플러스가 이미 가져갔다. 남은 두 주파수 중 SK텔레콤과 KT가 사생결단하듯 달려든 건 1.8㎓의 20㎒ 대역폭이다.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계속되는 ‘동시오름 입찰방식’ 경매의 특성상 낙찰가가 1조원을 넘어서리란 예상까지 나온다. 경매 시초가인 4455억원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액수다. 이들이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면서도 ‘판돈’을 계속 높여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바로 1.8㎓ 주파수의 특수성 때문이다.

 KT는 이미 1.8㎓ 대역에 20㎒ 폭의 4G용 주파수를 갖고 있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같은 대역의 20㎒ 폭은 이 회사가 이미 보유한 대역과 나란히 붙어 있다. KT가 이 대역을 가져갈 경우 1.8㎓ 주파수에서 기존 20㎒와 연속으로 40㎒의 대역폭을 갖게 된다. 4G 네트워크에서 ‘연속 대역’의 힘은 막강하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4차로 도로인데 활용도는 8차로에 버금간다”고 설명했다. KT로선 놓칠 수 없는 ‘황금주파수’인 셈이다.

SK텔레콤도 절박하긴 마찬가지다. 경쟁사들에 비해 부족한 4G용 주파수를 당장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KT가 ‘8차로 고속도로’를 가져가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KT가 1.8㎓를 가져가면 이를 방어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만도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실제 경매가가 과도하게 치솟을 경우 결국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남아 있는 주파수들의 향후 경매 일정을 조속히 공개하는 것만이 파국을 막는 길이라 본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면 특정 주파수에 목을 매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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