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시위대 4000명, 대학생 북한인권고발 집회 훼방 놨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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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연 대표

“그날(지난 20일) 서울시청 광장은 이 시대에 북한인권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인권대학생단체 LANK의 인지연(38·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2학년) 대표는 지난 20일 보수대학생 단체 7곳과 북한인권문화제인 ‘8월의 편지’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고 난 뒤 큰 실망감을 느꼈다. 이날 행사는 북한인권 사진전, 정치범수용소 음식 체험, 북한인권 영화 상영 등이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민주노총 등 희망시국대회 시위자들의 방해로 중단됐다. 인 대표는 “소수자 인권을 주장하는 진보단체들이 또 다른 소수자인 북한주민 인권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턴을 했던 인씨는 많은 시민과 북한인권을 이야기하고 싶어 6개월 전부터 이 행사를 준비했다. 함께 행사를 진행할 대학생 단체를 찾아다녔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영문 기획안, 전단 등을 만들었다. 그는 정치적 상징성이 큰 시청 광장에서 행사를 열고 싶어 지난 6월 일찌감치 집회 신청도 했다.

 하지만 당일 현장은 인씨의 기대를 저버렸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등을 주장하며 서울 숭례문에서 집회를 마친 희망시국대회 시위대 4000여 명이 오후 9시쯤 광장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광장 오른편에 무단으로 설치한 무대에서 스피커를 켜고 불법 집회를 시작했다. 야 5당 대표도 무대 위에 올라 발언했다. 한쪽에선 북한정권의 인권유린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 ‘김정일리아’가 상영 중이었다. 인 대표는 “문화제 이틀 전 정동영 의원 보좌관이 전화로 ‘행사를 8시 전에 끝내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며 “우리가 신고한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행사는 오후 11시쯤 무대에 전력을 공급하던 전선이 끊기면서 중단됐다. 인 대표는 “희망시국대회 시위대 측에서 전선을 끊었다”며 “경찰에 고발장 접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경찰도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행사를 빨리 끝내 달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며 “합법적인 행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 시위대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LANK는 앞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인 대표는 “당장 가을학기부터 북한인권 국제법을 다룬 논문을 쓰기 위해 세미나를 열 계획이고 8월의 편지 행사를 연례 행사로 만들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은·정원엽 기자

◆LANK(Legal Association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and Development)=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생 23명으로 구성된 북한인권단체. 국제법 등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통일한국사회를 연구하고,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이슈를 알리기 위해 2006년 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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