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서비스 ‘어정쩡’ 저가항공 … 유럽처럼 팍 못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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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른바 저가항공사들의 항공권 가격이 수상하다. 여름 성수기를 맞아 일반 항공사와의 가격 차이가 확 줄어들거나 오히려 비싼 경우까지 생기고 있는 것.

 22일 본지가 각 항공사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대에 출발하는 김포∼제주 구간 편도 항공권은 A저가항공사가 8만900원, B저가항공사는 8만400원이었다. 같은 시간대 출발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가격(9만2900원)과 1만2000원(13%)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되레 저가항공이 비싼 경우도 있었다. 이날 아시아나항공은 홈페이지에서 오후 1시45분 김포발 제주행 편도 항공권을 6만5030원에 팔았다. 특별 할인권이었다고는 하지만, 일반 항공사의 요금이 저가항공사보다 오히려 20% 가까이 쌌다. 저가항공사가 무늬만 저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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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 관계자는 “김포∼제주 노선은 평소 저가항공사가 일반 항공사에 비해 최고 30%까지 저렴하다”며 “7월 중순~8월 말 성수기를 맞아 저가항공사들이 요금을 많이 올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제선 가격도 10%대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24일 출발하는 인천∼오사카 편도 항공권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28만5000원. A저가항공은 25만원, B저가항공이 24만원이다. 약 14% 정도의 가격 차이다.

 저가항공사들은 성수기를 맞아 가격을 대폭 올렸지만 서비스는 뒷걸음질쳤다. 21일 제주에서 휴가를 마치고 김포행 저가항공사 비행기에 탑승한 이재헌(28)씨는 “자유좌석제여서 비행기까지 가는 셔틀버스에서 내린 뒤에 뜀박질을 해 자리를 잡았다”며 “누가 밀치는 바람에 활주로 바닥에 넘어질 뻔하기도 했고, 늦게 도착한 노부부는 떨어져 앉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저가항공사와 일반항공사의 항공권 가격 차이를 기자에게 들은 뒤 “그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줄 진작 알았다면 일반항공사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저가 항공사의 평소 할인폭인 20~30%도 라이언에어 같은 유럽 저가항공사의 할인율인 50~70%에 크게 못 미친다. 이에 대해 저가항공 업체들은 국내 사정상 유럽과 같은 파격적 할인은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우선 공항이 문제다. 유럽은 주요 도시 거점공항이 아닌 외곽공항을 이용해 항공운임을 낮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곽공항 자체가 없다.

 또 유럽 저가항공사는 운항노선 수와 항공기 대수가 국내 업체보다 훨씬 많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100만원을 주고 항공기 한 대를 빌린다고 할 경우 그 비행기가 5시간을 비행하든 10시간을 비행하든 같은 고정비가 지출된다. 항공기 가동률 자체를 높여야 그 고정비가 분산이 되는데 상대적으로 노선이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식의 고정비 분산이 쉽지 않다. 예비부품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다. 항공기 대수가 많으면 부품유지 비용을 분산시켜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고정비를 분산시키기 위한 항공기 대수를 최소 30대로 본다”며 “사업이 확장돼 그 정도 규모가 되면 더 낮은 값에 항공권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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