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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와 JAL 여승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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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도쿄특파원

지난주 지인이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거의 모든 국제공항의 입국심사대 제일 가장자리 줄은 승무원·외교관 전용 레인이다. 일반인이 설 수 없는 줄이다. 그날 일본항공(JAL) 여승무원들이 이 레인을 통해 입국절차를 밟고 있을 때였다. 입국 심사관이 갑자기 제지를 했다. 일행 중 1명이 제출한 입국신고서 내용을 문제삼았다고 한다. JAL 여승무원들이 잠시 주춤거리자 이 담당관은 옆 레인의 ‘일반 한국인’들을 향해 외쳤다. “이리 와서 줄 서세요.” 영문을 모르던 일반 내국인들이 승무원·외교관 전용 레인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JAL 여승무원들은 줄 제일 뒤로 밀렸다.

 이 장면과 한국의 인기 아이돌그룹 ‘비스트’가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입국 거부를 당한 것과의 연관성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처럼 요즘 한국과 일본 곳곳에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도발에 대해선 가만 있어선 안 된다. 소총으로 쏴오면 기관총으로 응사할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 혹은 변방에서 소꿉장난으로 장난감 권총을 만지작거리는 수준에 우리 국민 모두 대포를 들고 흥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비스트 입국 거부’ 소동도 알고 보면 그렇게 분개할 일이 아니었다. 소속사나 이벤트 대행사의 사무착오가 원인이었다. 지난 16일 발생한 이 ‘사건’을 18일 밤 만난 일 외무성의 한국 담당 고위 관료에게 물었다. 그는 “그런 일이 다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곤 즉석에서 전화로 부하직원에게 확인했다. 근데 우스운 건 그 부하직원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은 만 이틀이 지나도록 관심도 없고 내용도 모르는 사안을 놓고 우리만 머리를 동여매고 “신도 의원 입국 거부에 대한 보복행위 아니냐”며 에너지만 소모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한 일본 민방 프로그램에서 한국 여성 격투기 선수가 일본 남성 개그맨 3명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는 국내 보도가 있었다. 한류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하는 한 방송사 앞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대대적 항의시위를 벌였다는 소식도 있었다. 팩트 자체가 틀리거나 상당 부분 과잉 포장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한국으로 물 건너가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들이 ‘빙산’이 되고 만다. 상당수 포털이 톱 뉴스로, 그것도 선정적으로 부풀리고 이에 네티즌들의 반일감정은 에스컬레이트돼 간다. 그리고 일부 정치인이 이를 교묘하게 활용한다. 그게 일본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느 틈엔가 고착돼 버렸다.

 솔직히 요즘 일본의 외교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 국민이 그리 걱정하고 두려워할 게 못 된다. 해마다 반장 뽑듯 1년에 한 번꼴로 총리가 바뀌다 보니 예전의 치밀하고 체계적인 외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 사소한 반발, 도발 같은 건 우리가 통 크게 웃고 넘어가도 될 때가 됐다. 적당한 경계는 필요하지만 일본에 대한 과민반응, 과대평가는 오히려 한국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