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해인사 장 속세에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7면

해인사에서 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맛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경남 합천 가야산 자락의 천년고찰 해인사. 이 해인사 안에 우리 민족의 대표 유산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고, 팔만대장경판을 모시고 있는 건물인 해인사 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왜 선조는 이 국보를 해인사에 모셨을까. 여러 이유가 전해 내려오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해인사의 기후다. 햇빛 잘 내려앉고 바람 잘 통하는 명당이어서다. 이 천혜의 입지 조건이 맛을 좌우하는 우리네 전통음식이 있다. 바로 장(醬)이다. 해인사에서 담그는 장은, 팔만대장경의 비밀을 보듬고 있는 장이다.

해인사 장이 사상 최초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 여기서 공개된다는 뜻은, 시중에 판매된다는 뜻이다. 다음달 팔만대장경 중 초조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하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에서 해인사는 스님들이 전통 방식으로 빚은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대중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채비를 마친 해인사 장을 먼저 맛봤다.

글=이상은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대장경 모신 명당의 햇볕·바람, 장맛도 좌우

고기도 못 먹고 조미료도 안 쓰기 때문에, 절에서 장은 맛을 내는 중요한 존재다.

모든 절집 음식에 있어 장(醬)은 중요한 존재다. 고기를 먹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조미료도 넣지 못하니, 장이 맛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장 앞에서 까다로워진다.

 해인사 장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제일 먼저 궁금했던 건 해인사가 대중 앞에 된장을 내놓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알고 보니 해인사 스님을 위한 배려가 우선이었다. 지금까지 해인사는 암자마다 장을 따로 담갔다. 해인사는 암자 수만 23개, 본당과 암자에 있는 스님을 다 더하면 500여 명에 육박한다. 게다가 절 음식은 대부분이 장이 쓰이기 때문에 많은 양이 필요하다. 그 막대한 장을 옛날처럼 따로 담그는 일이 이제는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해인사 차원의 대량 생산이고, 이왕에 한꺼번에 많이 만드는 김에 대중에게 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스님들이 먹을 양을 뺀 나머지 장을 대중에게 팔면 수익도 생기지만 우리 전통음식의 명맥을 잇는 일도 되겠다는 데 해인사 스님들은 뜻을 모았다.

해발 950m 약수, 가마솥, 참나무 장작의 정성

장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햇빛과 물이다. 이 입지 조건을 해인사는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해인사가 속한 합천 가야산 일대는 대륙성 기후라 일교차가 매우 크고 건조한 데다, 해인사 일대는 낮에 햇볕이 유난히 쨍쨍하게 잘 든다. 실제로 해인사 장독을 만져보니 뜨끈뜨근했다. 장에 쓰는 물은 해인사의 가야산 암자 23개 중에서도 가장 높은, 해발 950m에 있는 고불암 약수를 가져다 쓴다. 고불암 약수는 예부터 맛이 달다고 소문이 나 있다. 메주는 가야산 황토로 빚은 황토방에서 숙성시킨다.

 이런 타고난 기본조건 위에 전통 방식을 따라 해인사 된장을 만든다. 해인사 사상 최초의 대규모 장 만들기 작업은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메주콩을 가마솥에 삶아 건조한 뒤 황토방에서 띄우고 다시 건조한 후 닦아서 장독 안에서 숙성시켰다. 이 과정에서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알루미늄 솥보다 사용하기 불편하고 천천히 달아오르지만 대신 은은하고 깊은 맛을 내는 무쇠 가마솥을 썼다. 그리고 가스불 대신 은은한 향이 있는 가야산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폈다. 메주는 지푸라기로 엮어 황토방에서 고슬고슬하게 말렸다. 생산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긴 했지만 모든 과정은 해인사 스님들이 까다롭게 감독했으며, 장 가르기 같은 일을 할 땐 스님 150여 명이 수행을 잠시 접고 방에서 나와 팔을 걷어붙였다.

 콩은 국산 콩을 썼고, 소금은 간수를 5년 동안 뺀 신안 천일염을 썼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만들어진 된장은 모두 1만395㎏. 장독 77개가 사용됐으며, 독마다 된장 135㎏이 담겼다. 올해 된장을 만들기 위해 쓰인 콩의 무게는 약 3850㎏, 천일염은 1540㎏, 물은 1155㎏이다. 맛을 내기 위해 다른 재료는 첨가하지 않았다.

 장독을 살짝 열어 된장을 찍어 먹어봤더니 노르스름한 된장 맛이 군더더기 없이 단순했다. 이것저것 넣지 않고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어서인지 맛은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다. 소박하지만 웅숭깊은 맛. 직접 맛본 해인사 장맛이었다.

 해인사 총무 심우 스님은 “이 된장은 1차적으로는 우리가 먹기 위해 담갔지만, 2차적으로는 절 음식의 전통과 명맥이 점점 끊기는 게 안타까워 명맥을 잇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9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45일간 경남 합천 해인사 일대에서 열리는 축제다. 경상남도와 합천군, 해인사가 주최하며 ‘1000년을 이어온 대장경의 가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입장료 어른 1만원. 홈페이지(www.tripitaka2011.com), 055-211-6251. 해인사에서 축제 개막에 맞춰 손수 담근 된장과 간장, 고추장 판매를 사상 최초로 시작한다. 값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당 1만8000원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 관련 문의 070-4251-920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