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가 만능은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 일리노이州 에번스턴에서 사는 낸시 시거(56)만큼 유전자 검사의 장점과 맹점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14세 때 유방암으로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5년도 안 돼 이모도 같은 병으로 숨졌다. 시거가 자신의 DNA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검사를 고대한 것도 당연하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여성의 유방암·난소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결함을 찾아내는 진단법이 개발됐다. 시거는 선뜻 검사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알고는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가 나오자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그녀에게 실험실에서 보내온 편지를 건넸다. 눈물로 흐려진 그녀의 시야에 ‘변종’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일생 동안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5% 정도로 높고, 난소암 확률은 50%”라는 내용이었다. 서한은 “제3의 연구소에서 확인받았다”는 말까지 담고 있었다.

발병 확률이 그 정도라고 하자 시거는 용단을 내렸다. 난소암을 진단하는 믿을 만한 검사법이 없기 때문에 뒤늦게 종양이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미리 난소를 제거해 발병의 소지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수술 후 회복중이던 그녀가 양쪽 유방도 마저 떼어낼까 생각하던 중 의사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유전자는 모두 정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과거에 헌혈한 연구소에서 1차 검사의 오류를 발견한 것이다.

원래의 연구소는 곧 실수를 시인하며 “이번 일로 빚어졌을 모든 근심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사과편지를 보내고 사과의 표시로 검사비 3백50달러를 환불했다. 시거는 그런 실수가 빚어진 경위를 추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그녀는 연구소 온코메드와 모회사 진 로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엄청난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거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목숨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진단법이 속출하는 요즘 그녀의 이야기는 검사가 만능은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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