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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현대, 회사·인력·지분 3분열 가속화

중앙일보

입력

정몽구, 정몽헌 회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정몽헌 회장의 단일체제로 매듭지어짐에 따라 현대그룹의 `핵분열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룹 주력사업중 전자, 건설, 금융서비스 부문은 정몽헌 회장의 관할로 귀속됐지만 자동차그룹은 `‘독립그룹’으로서의 변신을 서두를 것으로 관측된다.

그룹 경영라인에서 정몽구 회장이 `축출됨으로써 올 상반기로 예정된 현대의 계열분리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공업 부문은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대리인이 전문경영인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로써 현대는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세갈래로 나눠질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정몽구 회장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고 자동차 회장 직함만을 갖게 됨에 따라 사실상 자동차부문은 그룹에서 26일 분리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정식 계열분리는 지분정리 절차 등이 남아 있어 6월까지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도 “원칙대로 하겠지만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소그룹에 포함된 회사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정공, 현대캐피탈, 현대오토넷 등 5개사다. 현대자동차가 최대 주주인 고려산업개발이 자동차부문으로 갈지, 건설부문으로 가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현대그룹=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이 직접 통할하게 된다. 전자부문에서는 현대전자,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정보기술 등 3개사, 건설부문에서는 현대건설, 현대아산 등 2개사, 금융·서비스부문에서는 현대종합상사,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물류 등 12개사가 소속돼 있다.
3개 부문이 소그룹으로 분할된다고 해도 정몽헌 회장이 관할할 것이 확실시돼 사실상 동일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금융부문은 정부의 재벌견제 움직임에 대비,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게 된다. 특히 이익치 회장이 맡고 있는 현대증권의 경우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집중육성시킨다는 게 정몽헌 회장의 복안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이익치 회장의 그룹내 위상이 올라가면서 전반적으로 비오너 출신의 전문경영인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중공업그룹=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2개사가 포함돼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의 최대 주주다.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는 정주영 명예회장이며 2대 주주는 정몽준 의원이다. 현대중공업은 오래 전부터 정몽준 의원이 관장하는 회사로 분류돼 있다. 경영은 鄭의원이 지정한 전문경영인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鄭의원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적 도전을 감행할 경우 이 회사의 대주주라는 자리는 부담스러울 수 있어 적절한 시점을 노려 지분을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언제, 어떻게 지분을 정리할지도 관심거리다.

鄭명예회장은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 지분의 각각 11.56%와 4.49%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 총 16.05%에 불과한 이 지분이 각 계열사에 칡넝쿨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정몽헌 회장을 현대그룹의 공식대표로 `‘낙점’한 이상 조만간 이 지분을 정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후계자를 정하고 그룹경영권을 넘긴 만큼 지분도 함께 상속하는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鄭명예회장의 냉정하리만큼 치밀한 성향을 고려해 볼 때 당장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몇년간 아들들에게 경영권을 넘겨 주고 지분을 조금씩 떼어 준 적은 있어도 자신의 영향력을 상실할 정도의 지분을 넘길 스타일은 아니라는 게 현대 주변의 관측이다. 특히 `‘수렴청정’ 형식으로 아직까지 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鄭명예회장의 입장을 감안하면 미리 지분을 상속함으로써 스스로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왕자의 난’ 이후 왕자주변에 있는 가신들의 거취도 관심거리. 승리한 몽헌 회장측은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현대증권 등을 중심으로 포진한 핵심 측근들을 논공행상을 겸해 더욱 중용할 전망이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이번 인사 파동이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확인한 계기가 됐다. 재벌의 금융계열사 지배를 갈수록 강하게 단속하려는 정부의 의지와도 맞물려 李회장은 현대 금융부문에서 몽헌 회장의 대리인으로서 위치를 굳힐 전망이다.

몽헌 회장 외유중 국내에서 鄭명예회장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MK 견제와 MH의 의사전달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한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도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유일한 그룹 조직인 구조조정본부를 최근 장악, 이번 파문 기간 몽헌 회장의 뜻을 그룹의 뜻으로 언론에 알리는 `‘입’노릇을 한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도 중용이 예상된다. 몽헌 회장의 `‘그림자’로 불리는 핵심 보좌관 가운데 한 명인 강명구 현대전자 부사장 등도 관심의 대상이다.

몽헌 회장이 그룹 유일 회장에 등극함에 따라 할 일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몽구 회장측도 현대, 기아자동차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내부 결속 다지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MK사단의 인맥을 보면 회장 고교 동문과 그룹 종합기획실(현 구조조정본부)
출신이 눈에 많이 띈다.

이계안 현대차 사장은 몽구 회장의 경복고 후배이자 구조조정본부 경영전략팀장 출신. 계속 핵심 브레인 역할을 유지할 전망이다. 몽구 회장 복귀 발표를 맡았던 정순원 현대·기아차 기획조정실장도 몽구 회장의 고교 후배로 현대경제연구원 재직 시절부터 몽구 회장을 도왔다.

MK가 당초 현대증권 후보로 밀었던 노정익 현대캐피탈 부사장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연스레 MK사단에 합류하게 됐다는 평이다. 그간 명예회장 쪽으로만 분류돼 온 박세용 인천제철 회장의 경우가 다소 이채롭다. 朴회장은 지난 3월26일 MK측 대책회의에 모습을 드러내 몽구 회장 진영에 본격 참여한 것으로 비쳐진다.

그간 몽구, 몽헌 어느쪽 인맥으로도 분류되지 않던 전문경영인들이 MH사단에 대거 줄서기에 나설 조짐도 벌써부터 보인다. 과거 `현대의 누구도 “왕회장 사람이 아닌 이가 없다”는 말이 있었던 것처럼 많은 전문경영인들이 새롭게 경영 대권을 승계한 몽헌 회장의 우산 밑으로 모여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이기수 기자 <이코노미스트 제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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