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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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
우리가 속한 은하(밤하늘의 은하수) 내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행성은 얼마나 될까. 400만~1000억 개로 추산된다. 이 중에는 지구에서처럼 생명이 탄생한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은하계가 생성된 것은 100 억 년 전이다. 일부 외계 행성에서 지능이 진화해 고도의 과학문명을 건설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 문명은 불과 몇 억년 지나지 않아 은하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을 터이다. 많은 과학자가 그렇게 믿고 있다. 지구의 경우 그들이 만든 ‘폰 노이만 기계’라도 도착했어야 한다. 수학자이자 공학자인 창안자의 이름을 딴 이 기계는 주변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를 복제하면서 광대한 우주의 구석구석을 탐사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그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이는 ‘페르미 역설’이라 불린다. 1950년 이를 처음 제기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상 수상)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역설이라 불리는 것은 외계 문명의 증거가 발견돼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답변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문명의 수명’에 관한 것이다. 인류 문명을 예로 들어 보자.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핵탄두는 2만6000여 개, 65억 인구를 몇 차례 멸절시키고도 남을 숫자다. 앞으로 수소폭탄의 100배 위력을 지닌 반물질폭탄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인류는 실험실에서 반수소·반헬륨 등의 반물질을 이미 만들어 냈다). 우리가 외계 문명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몇 억년 버티지 못하고 이미 멸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주는 거대한 공동묘지일 가능성도 있다. 인류의 외계지능탐사(SETI)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침 세티연구소(SETI INSTITUTE·www.seti.org)의 탐사활동이 올 9월 재개된다는 소식이 최근 발표됐다. 연구소는 84년 설립된 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과학재단 등의 후원을 받으며 외계 문명이 보내올 가능성이 있는 전파신호를 수신·분석해 왔다. 하지만 지난 4월 자금난으로 전파망원경 가동을 중지했다가 자체 모금을 통해 이번에 재기한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 외계 문명이 멀쩡히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반드시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 말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