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만에 되찾은 이름, 북파공작원 전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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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49년이 걸렸다. 전봉수(68)씨가 북파(北派)공작원이었던 2살 위 형 광수(사진)씨의 사망 사실을 알기까지 그처럼 긴 세월이 흘렀다. 전씨는 지난달 14일 정보사령부로부터 ‘전광수(全光洙)씨는 1962년 9월 30일 북파공작 훈련 도중 사망했다’는 내용의 순직 확인서를 받았다.

 광수씨는 62년 5월 “돈 많이 벌어 오겠다”며 북파공작원에 지원했다. 그해 8월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엽서를 가족에게 보낸 뒤론 소식이 끊겼다. 어머니 조운영씨는 그때부터 광수씨를 찾아 다녔다. 생계를 위해 하던 하숙집 운영도 포기하고 육군본부 장교식당에 취직했다. 광수씨의 행방을 장교들에게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조씨는 2006년 91세로 운명하기까지 광수씨의 유품이 돼 버린 엽서를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한다.

 전씨가 형의 사망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 건 국무총리 소속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보상심의위·위원장 서태석)’의 노력 덕분이었다. 보상심의위는 2005년 발족했다. 2002년 일부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도심에서 가스통 화염 시위를 벌이면서 그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을 규정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전씨의 경우 그동안 청와대를 비롯해 관계 당국에 여러 차례 진정서를 냈지만 형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지 못했다. 광수씨가 복무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1만4000여 명의 북파공작원이 기재된 정보사의 공작원 명부에도 ‘전광수’란 이름은 없었다. 전씨는 2005년 형이 근무했던 북파공작 부대의 동료들로부터 광수씨가 함께 복무했다는 증언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보상심의위에 보상을 신청했다. 광수씨가 언제 사망했는지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보상심의위는 올 2월 광수씨의 이름을 ‘배경 내사자 명단’에서 찾아냈다. 이 명단은 과거 보안당국이 실종된 북파공작원의 가족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북파공작원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체포돼 북한의 포섭공작에 넘어갈 경우에 대비해 그런 명단을 작성했다고 한다. 보상심의위는 다른 북파공작원으로부터 “당시 훈련 도중 사고가 일어나 여러 명이 죽었다. 사망자 중 광수씨도 포함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런 다음 전광수씨가 순직했다는 걸 동생 봉수씨에게 알려줬다. 현재 전광수씨에 대한 보상 심의가 진행 중이다. 보상심의위의 결정이 내려지면 전광수씨 유족은 1억4000만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게 된다.

 전봉수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늦었지만 어머니의 한을 풀어 다행”이라며 “이제 형의 시신을 찾아 현충원에 모시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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