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81) 태현실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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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태현실 주연의 영화 ‘제76 포로수용소’(1966). 두 사람은 한때 스캔들 기사가 날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함께했다. 태현실은 드라마 ‘여로’로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1964년 11월 결혼 이후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여배우가 있다. 태현실이다. 결혼 전까지 나의 단짝은 물론 엄앵란이었다. 아내가 영화배우 생활을 차츰 정리하면서 나는 다른 여배우들과 돌아가며 연기를 해야 했다. 65년과 66년, 어쩌다 보니 태현실과 계속 작품을 찍게 됐다. 65년에는 ‘수탉 같은 사나이’ ‘정사’ ‘로타리의 미소’ ‘나는 죽기 싫다’ ‘누구를 위한 반항이냐’ 다섯 편, 66년에는 ‘제76 포로수용소’ ‘긴 여로’ ‘나는 왕이다’ ‘아빠의 청춘’ 네 편을 함께했다.

　태현실은 그 무렵 지금의 남편인 멋쟁이 김철환씨와 열애 중이었다. 나는 남동생이 없던 터라 ‘형님’이라며 따르는 사람들을 특별히 챙겼다. 그 중 한 명인 김씨는 태현실의 촬영장을 자주 찾았다. 나와 태현실·김씨가 촬영장에 있는 어느 날, 누군가가 주간지를 들고 왔다. 나와 태현실의 연애기사였다. 우리 셋은 멋쩍게 웃었다. 작품을 연달아 같이 찍는다는 것에 추측을 보탠 기사였다.

　태현실은 그 기사로 엄앵란 팬들에게 미움을 샀다. ‘엄앵란이 있는데 어딜 끼어드느냐’는 식이었다. 본의 아니게 태현실의 인기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 틈에 치고 올라온 문희·남정임·윤정희 트로이카에게 자리를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촬영이 끝나면 묵정동 집까지 차로 데려다 주곤 했다. 엄앵란도 훗날 TV에서 이 스캔들에 대해 해명을 해주었다. 태현실은 68년 결혼 후 3년을 쉬고 TV 쪽으로 넘어가 72년 KBS 드라마 ‘여로’의 아씨 역할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TV 드라마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여로’에서 바보 역할을 한 장욱제를 빼놓을 수 없다. 장욱제는 편안하게 생긴 인물인데 ‘여로’에선 처음부터 바보로 등장했다. 이 역할이 각인된 탓에, 장욱제는 배우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어떤 역을 맡아도 그에게선 영구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뒤로 영화와 TV의 모든 연기자가 장욱제를 모델로 삼아 특별한 개성을 갖는 주인공 역을 조심했다. 장욱제는 파라다이스 그룹 전낙원 회장의 계열사 전무로 제주도에 내려가면서 연기자 생활을 접었다.

　나와의 스캔들도 빌미가 했지만, 태현실이 문희·남정임·윤정희에게 밀린 이유는 따로 있다. 태현실은 61년 신필름 작품 ‘아름다운 수의’로 데뷔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카메라를 잘 받는 완벽한 얼굴, 적당한 볼륨을 가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대사가 정확하고 발음은 또렷했다. 눈은 또 얼마나 예뻤던가. 그러나 영화배우는 눈이 예쁜 걸로만 되지 않는다.

　영화배우의 눈은 조리개가 잘 돌아가야 한다. 눈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라. 고양이는 화날 때와 졸릴 때 눈동자가 확실히 구별된다. 선배배우 장동휘는 눈이 크지도, 균형 잡힌 얼굴도 아니었지만 눈의 조리개로 감정을 뛰어나게 처리했다. 그러했기에 조직 보스, 집단의 우두머리 역은 그의 차지였다. 문희도 눈으로 감정표현을 잘 해내는 배우였다. 68년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문희의 눈물 연기에 빠져들지 않는 관객은 없었다.

　태현실은 눈의 조리개가 약했다. 카메라맨과 감독들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태현실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TV드라마에선 최고가 됐다. 그녀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