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교복도 빨아주지 않고, 밥도 차려주지 않는 엄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불량한 엄마
최영애 지음, 별숲
180쪽, 9500원
 

‘진짜 우리 엄마 맞아?’ 성장기에 누구나 한번쯤 품게 되는 의심이다. 소설의 주인공 영락의 경우 그 의심의 크기가 제법 크다. 엄마라는 사람이 고1짜리 아들의 교복도 빨아주지 않고, 밥도 잘 차려주지 않는다. 엄마의 대응 논리도 틀린 건 아니다. “교복 내가 입니?” 믿을 건 예닐곱 살 무렵 말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기억뿐. 영락은 유치원에 다녀오면 혼자 문 열고 들어가 돈 벌러 간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였다. 결핍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그러나 “나는 엄마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진 아들”(33쪽)이라는 불평도 이내 배부른 것이 돼버렸다. 엄마는 독립을 준비하라며 아들을 고시원으로 보내버리니 말이다.

 설상가상, 학교에선 심리검사 결과가 나쁘다며 일주일에 한번씩 상담교사를 만나라는 판정을 받는다. 얼굴도 모르는 상담교사더러 집이 아닌 고시원으로 오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집에는 이미 수상한 아저씨가 눌러 앉아 버렸다.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황당한 고시촌 생활, 말썽을 피운 적은 없지만 칭찬받을 일도 없는 학교생활,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영락은 넘치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잊으려 독한 마음을 먹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상담교사는 도리어 영락이더러 엄마의 상처를 치료해주라고 당부한다.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주인공을 보니 든든해진다. ‘희생하는 엄마’라는 신화도 얼마간 벗겨져야 할 콩깍지겠다. 에피소드가 재미있어 착착 책장이 넘어가는데, 반전 부분에서 되레 김이 빠지는 감이 있다.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