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경영학의 아버지’ 드러커가 일본그림에 빠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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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붓의 노래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번역 및 해설
21세기북스
256쪽, 1만5000원

일본 미술에 열광하는 서양인은 ‘제 눈에 안경’으로 일본화(日本畵)를 보는 경우가 많다.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90)가 일본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에서 자신이 꿈꿨던 밝고 선명한 이미지를 발견하곤 부러워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화를 본다”고 말했다. 일본과 일본적인 것의 근거를 대기 위해서 그는 50여 년 일본화를 수집하고 일본 미술을 연구했다.

피터 드러커(左), 이재규(右)

 드러커가 일본 그림들에서 추출해내고 싶었던 건 현대일본의 눈부신 부흥을 이끌어낸 일본인의 양극적 요소다. 독립된 개인이기보다 조직 속의 구성원이기를 자임하는 동시에 조직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개성 넘치는 성과를 일궈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여러 학문에 두루 밝은 그의 통찰력과 통섭 능력은 정평이 나있지만 미술사는 그리 만만한 학문이 아니다. 일본에 미술이란 말이 등장한 건 서양미술사가 소개된 뒤인 1872년이다. 일본미술사의 터를 닦은 오카쿠라 덴신(1862~1913) 도쿄미술학교 교장은 ‘미술은 나라의 정화’라는 논지를 폈을 정도다. 옛 일본화 몇 십 점의 공간 구조와 선묘를 끌어다가 현대 일본사회를 설명하는 건 자칫 견강부회(牽强附會)의 혐의를 쓸 수 있다.

 정색하고 일본미술사를 공부할 양이 아니라면 훈훈한 인정(人情)의 향취에 젖어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평생 드러커 연구자로 살다가 8일 별세한 이재규(1947~2011) 전 대구대 총장의 애정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드러커의 글은 그 자신의 일본화 수집품인 ‘산소 컬렉션(Sanso Collection)’ 전시회 도록에 쓴 해설뿐인데 이 적은 분량을 책 한 권으로 풍성하게 한 이 전 총장의 공력이 새삼 학인(學人)의 마음을 헤아리게 만든다. 마지막 페이지의 한마디야말로 붓의 노래다. “좋은 것 모두 내려 두고 떠나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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