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이 통일 원한다 말할 수 있게 도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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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 한 시민이 독일 베를린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 세워진 철제 벽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동서독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곳이다. 1961년 건설된 156㎞ 길이의 베를린 장벽은 89년 붕괴된 이후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베를린시는 13일 장벽 건설 50주년을 맞아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800m가 복원됐으며 앞으로 500m가 추가로 세워진다. [베를린 로이터=뉴시스]

에펠만

13일로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지 50주년을 맞는다. 1961년 급조된 장벽은 38년 만인 89년 붕괴됐으며 이듬해 독일 통일이 이뤄졌다. 하지만 콘크리트 장막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역사로 남아 있다. 동독 마지막 정부에서 ‘군축 및 국방부 장관’(90년 4~10월)을 역임했던 라이너 에펠만(Rainer Eppelmann·68)은 장벽의 설치와 붕괴를 직접 목격했다. 그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베를린 장벽은 우리에게 ‘독재는 절대 안 된다’는 살아 있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야 목사로 동독 공산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던 그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에펠만은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 다수가 통일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남한 정부가 북한에 더 다가서려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동부 베를린에서 태어난 에펠만은 장벽 설치로 서베를린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건축학도의 꿈을 접는 아픔을 겪었다. 66년 군 복무 시절에는 집총훈련을 거부해 8개월간 복역했다. 이후 신학을 공부해 7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통일 후 4선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민당(CDU) 노동위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구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 청산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에펠만과의 일문일답.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지 반세기를 맞는다.

 “지금 우리에겐 ‘독재는 절대 안 된다’는 교훈으로 남았다. 하지만 장벽 설치 당시에는 엄청난 좌절이었다. 당장 수십 만의 이산가족이 생긴 것 아닌가. 나 역시 서베를린에서 다니던 건축학교에서의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동독은 ‘파시스트 방지’라는 이유를 내걸고 장벽을 세웠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다. 실제로는 체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장벽을 세운 것은 동독 스스로가 체제의 종언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동독인들은 인권이 유린되고 독재체제에 신음하는 ‘도덕적 사형 선고’ 상태에서 살았으며 결국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군축 및 국방부 장관’ 재임 시 군부 해체를 담당했는데.

 “큰 저항은 없었다. 90년 동독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통일을 원한다는 점을 밝힌 마당에 군인들이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실업자가 될 직업군인들이 문제였다. 채용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퇴역하는 장성들에게는 ‘법적 처벌은 없다’는 점을 알려줬다.”

 -남북한 통일에 대한 전망은.

 “지금의 남북한 상황은 분명 90년 동·서독 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없었던 것이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다. 아랍에서 그랬듯, 북한에서도 모바일 혁명을 기대할 수 있다. 한 가지 전제가 더 있다. 북한 주민들 다수가 통일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북한과 연관되는 모든 기회를 잡아 활용해야 한다.”

이현택 기자, 이태규 인턴기자(한국외대 영문 4년)

◆베를린 장벽=1961년 8월 13일 동독이 설치한 156㎞ 길이의 장벽. 옛 동독 지역 내 서독 영토인 서베를린 외곽 전역을 둘러쌌다. 89년 동독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들이 해체했다. 이듬해 10월 통일 당시 장벽은 대부분 무너졌고, 302개의 감시탑 중 3개만 원형을 유지했다. 베를린시는 냉전의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베를린 장벽을 800m가량 복원했다. 내년까지 500m의 장벽이 추가로 세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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