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동국제강 장상태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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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그룹 장상태(張相泰)회장이 4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73세.

"철강 부문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는 다른 사업은 말도 꺼내지 말라" 며 우직하게 '철강 외길' 을 걸어온 고인은 지난달 20일 자신의 장례를 '간소하게' 화장으로 치루라고 유언했다.

이에 따라 그의 유해는 8일 벽제 장묘사업소에서 봉안돼 경기도 광주 선영의 가족납골당에 안치된다.

고인은 생전에 포철 신화를 일군 박태준 현 총리와 강원산업 창업주인 고(故) 정인욱씨와 가깝게 지내며 철강산업의 발전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한국 철강산업과 역사를 함께 해온 기업인 이라고 고인을 평가한 포항제철 유상부 회장은 "근검절약하는 생활 태도와 무리한 차입경영을 하지 않고 이익을 재투자하는 경영 방식은 후배 철강인의 모범을 보였다" 고 회고했다.

부산 동래고교.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張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1955년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듬해 귀국해 전무로 동국제강 경영에 참여했다.

64년 3월 창업자인 부친 경호(敬浩.75년 작고)씨의 뒤를 이어 동국제강 사장에 취임한 고인은 용광로 설치(65년 2월).전기로 제강기술 도입(66년 4월).중후판 생산(71년)등 새기술 도입에 앞장섰다.

張회장은 공장 설비를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주변에서 그룹 위상에 맞게 사옥을 지어야 한다고 제안하자 "사옥 짓는데 왜 돈 들이냐. 그럴 돈 있으면 설비를 하나 더 늘려야 한다" "백원만 있어도 설비에 투자하겠다" 면서 뿌리쳤다.

실제로 동국제강은 74년부터 서울 중구 수하동에 있는 3층짜리 초등학교 건물을 고쳐 사옥으로 사용해 왔다.

사업상 일본 출장을 자주 간 고인은 수행비서 없이 혼자 다녔다. 그는 해마다 한차례씩 일본에서 임대 아파트를 빌려 며칠씩 틀어박혀 경제.경영관련 서적을 읽은 뒤 실제 경영에 활용했다.

그는 98년 그룹의 모태인 부산공장을 폐쇄하면서 1백억원을 출연, 대원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토지는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다' 는 신조에 따라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은 張회장은 92년 조세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숙자(金淑子)씨와 2남 3녀 장남 세주, 차남 세욱(世郁.동국제강 이사), 딸 영빈(永彬).문경(文卿).윤희(允嬉)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분향실 1호(02-760-2011)며', 영결식은 8일 오전 8시 동국제강 본사 국제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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