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故김남주 시인 헌정앨범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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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보다 혁명가로 불리길 원했던 '남민전 전사(戰士)' 故 김남주 시인. 1979년대 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88년 특사를 받기 전까지 9년 3개월간 투옥생활을 한 뒤 출소했지만 췌장암 투병 끝에 94년 세상을 떠났다.

옥중집필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 그가 1.5평의 감옥에서 우유팩과 휴지에 등에 숨겨뒀던 못으로 새긴 시들은 〈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등의 시집으로 발간돼 80~90년대 시대의 아픔을 공유했던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김남주 시인에게 앨범이 헌정됐다.

'386세대' 를 대표하는 가수 안치환이 최근 발표한 6.6집 앨범 〈리멤버〉가 그것. 김남주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들만 모았다.

이미 발표된 7곡과 신곡 3곡, 김남주 시인의 육성 낭송 등을 포함해 모두 13곡이 수록됐다.

기존 헌정앨범이 주로 시대를 선도한 대중음악인에게 바쳤던 것과는 달리 그 대상이 시인이며 헌정인이 직접 곡을 붙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뜬금없이 벌인 일이 아니라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분이 옥중생활을 할 때부터 저는 그의 시를 읽었고, 출소하신 뒤에는 함께 공연도 다녔죠. 팬들에게 헌정앨범을 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겁니다."

안치환은 이번 앨범을 낸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 했다. 90년대 초 김남주 시인의 옥중시 〈저 창살에도 햇살이〉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그는 이후에도 〈자유〉〈물따라 나도 가면서〉〈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등 김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줄곧 불러왔다.

"그의 시가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갔다, 진부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내 노래가 공허하고 나약하게 여겨져 힘들 때 그의 시들을 다시 읽었고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힘있고 정확한 해답을 안겨줬습니다."

신곡은 〈똥파리와 인간〉〈지는 잎새 쌓이거든〉〈돌맹이 하나〉 등이다.

"똥파린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붕붕거리며 산다/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더미건/상관없다 상관없다/보라/인간은 돈이 많이 쌓이 곳에 가서/웅성거리며 무리져 산다/그곳이 어디건 생지옥이건 전쟁터이건/상관없다…" 라며 "똥파리에겐 더 많은 똥을/인간들에게 더 많은 돈을" 이라고 풍자가 번득이는 시에 곡을 붙인 〈똥파리와 인간〉은 매운 싯귀와는 대조적으로 경쾌한 연주가 입혀져 씁쓸한 느낌을 고조시킨다.

반면 〈지는 잎새 쌓이거든〉과 〈산국화〉는 애틋함과 서글픔이 배인 서정시들이다.

〈지는 잎새…〉는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오세요…" 라는 싯구에 후배가수 송봉주가 연주한 악기 오카리나의 아련한 음색이 이 곡의 서정성을 증폭시킨다. 〈산국화〉는 맑고 구슬픈 피아노 연주에 초창기 안치환을 기억케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앨범에서 귀를 사로잡는 것은 김시인의 육성낭독으로 시작해 안치환의 노래로 이어지는 〈자유〉라는 곡이다. 단호하고 힘있는 시인의 육성이 애틋한 전율로 다가온다.

이 앨범엔 또 80년대 대학가와 노동 현장에서 불리웠던 〈죽창가〉(김경주 곡)와 〈함께 가자 이길을〉(변계원 곡)등 김남주 시에 곡을 붙인 다른 작곡자의 두 곡도 실려있다.

시와 노래의 힘을 빌어 뒤를 돌아보는 386세대는 남다른 감흥을 느낄 것 같다.

앨범의 판매로 얻어지는 인세는 시인의 유족에게 돌아갈 예정. 안치환은 이번 헌정앨범 발표를 기념해 오는 4~9일 연강홀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02-3272-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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