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세금 줄줄샌다] 거제 해금강 관광부지 129억 헛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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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억원의 세금을 들여 조성한 거제도 해금강 집단시설지구가 7년째 텅 빈 채 잡초만 자라고 있다. 출입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와 ‘분양문의’ 팻말이 붙어 있다. [거제=송봉근 기자]


9일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9-2번지 해금강 집단시설지구. 4만2544㎡나 되는 규모지만 출입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분양문의 639-32XX’라고 적힌 팻말만 부서진 채 출입문에 붙어 있다. 진입로(2차로)의 인도에는 잡초가 어른 허리 높이만큼 자라 지나가기도 어렵다. 10여m 간격으로 세워진 가로등 기둥은 칠이 벗겨졌고 녹이 슬었다. 빈터에도 풀이 무성하기는 마찬가지라 황량한 벌판 같다.

원래 이곳은 해금강과 한려수도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상업시설이 들어설 자리였다. 하지만 부지가 조성된 지 7년이 됐는데도 텅 비어 있다. 이곳에서 흑염소를 키우는 이임열(78)씨는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온다고 해 갈곶리 주민들의 기대가 컸는데 아직도 텅 빈 그대로라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자연공원법과 문화재보호법에 묶여 있던 주변지역의 규제가 덩달아 풀릴 것으로 기대해 땅을 팔았다. 하지만 지역은 여전히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다.

양정식 전 시장

 거제시가 2000년 이곳 땅을 사들여 4년 동안 부지 조성에 투입한 세금은 129억원. 문화체육관광부의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의 하나로 선정돼 국비 44억원, 지방비 85억원을 들여 ▶전기·수도시설 ▶진입로와 주차장·광장 등 기반시설 ▶숙박·상업용지 조성공사를 했다. 문제는 이곳에 숙박·상업시설을 짓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터를 사는데 127억원(입찰 예정가), 숙박·상업시설을 짓는 데 300억원(추정) 등 적어도 400억원 이상 투자해야 하지만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이 한려수도국립공원 안에 있어 ‘자연공원법’에 따른 규제를 받는다. 또 500m 떨어진 곳에 명승 제2호인 해금강 문화재가 있어 ‘문화재보호법’도 지켜야 한다. 건축제한이 까다롭다는 뜻이다. 건물은 4층 이하, 높이 18m를 넘지 못하고(문화재보호법), 건물 바닥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건폐율은 15~60% 이하, 층수는 3~5층(자연공원법)으로 제한돼 있다. 일반지역 건폐율이 6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사업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숙박·상업시설 유치를 위해 2005~2009년에 여섯 차례나 입찰을 했지만 무산됐다. 올 4월 한 업체가 터를 낙찰받아 보증금 6억3000여만원을 냈다 보증금을 포기하고 손을 뗐다. 이 사업은 2000년 4월 사업 타당성·효율성을 검증하는 경남도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추진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타당성 검증을 하지 않고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으로 선정해 국비를 지원했다. 거제시·경남도·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10여 년 전 일이어서 기본 현황 외에는 당시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다. 누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3월에 거제시가 ‘해금강 집단시설지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건폐율과 고도제한 등 건축규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사업이 표류했다며 기관주의를 주었다.

 한기수 거제시 의원은 “사업을 최종 승인한 민선 2기 양정식 전 시장과 실무책임자인 국·과장들이 다 퇴임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며 “애초부터 사업성이 없는 사업을 자치단체장이 검증하지 않고 치적 쌓기 용으로 추진해 세금만 낭비한 대표적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의회가 조사해 책임을 물을 방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거제=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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