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정부가 ‘눈앞의 악재’보다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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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군인이 화염 속에서 두 어린이를 구출하고 있다. ‘절대강국’ 미국이 도운 베트남전에서 남베트남이 패한 이유는 남베트남 주민이 정부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글로벌 증시패닉도 결국은 미국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탓이다. [중앙포토]

전 세계를 호령하던 ‘수퍼파워’ 국가인 미국이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군사력을 동원했지만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을 신은 게릴라에게 무릎을 꿇은 기이한 싸움이 베트남 전쟁이다. 사실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결과가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야전’에서의 승리자는 항상 미군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전투’에서는 거의 패하지 않았고, 미군 사상자 규모의 10배에 달하는 피해를 적에게 입혔다. 하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한 해괴한 결과를 만들어 낸 주범은 바로 남베트남 정부였다.

 전쟁 기간 내내 남베트남 정부는 남베트남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가 발전의 비전은 안중에도 없는 정권이었으므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정부 불만세력은 자연히 베트콩의 지지자로 돌아섰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평범한 국민은 ‘누가 정권을 잡든 바뀔 것은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사로잡혔다. 정부가 ‘베트콩은 없다’며 안전지대임을 선포한 마을에 밤이 찾아오면 베트콩이 활개치는 판국이니 ‘정부의 대응능력’을 국민이 불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라가 패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은 “한데 뭉쳐 침략자에 맞서자”는 정부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의 폭락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부진한 거시 경제 지표와 미국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단기적인 하락 폭이 너무 크다.

 이번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적했듯 국가 부도사태가 임박했음에도 정치권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않고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이 투자자에게 결코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경기침체에 미국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관측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시장 반전의 열쇠는 향후 벌어질 사태에 대해 미국 정부가 충분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투자자가 언제 신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주식 시장에서 ‘신뢰’는 어떠한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핵심 변수다.

 날이 새면 바뀔 수 있는 철 지난 경제지표보다 미국의 연방정부와 연방준비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이 열 배, 백 배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신용등급의 하향조정에도 미국 정책 당국이 경제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았음을 이른 시간 내에 증명해 주길 투자자는 원하고 있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1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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