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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외주의의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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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
지식에디터

자신감으로 충만하면 성과도 좋을 것 같다.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2006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중동·아프리카 학생들은 자신들이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일본·홍콩·대만 학생들은 수학에 자신이 없다. 시험을 쳐보면 결과는 반대다.

 자신감의 원천 중 하나는 ‘나’ 혹은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이다. 최근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일격을 당한 미국의 자신감은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서 나온다. 미국은 그 역사의 출발부터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나라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다르다’는 믿음은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생각이다. 소련 지도자 스탈린(1878~1953)은 미국 공산당에 ‘공산주의 이단’이 자라고 있다는 경계론을 폈다. 미국 공산당이 미국 공산주의는 유럽·러시아의 공산주의와 다른 역사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미국이 예외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이지만 ‘미국 예외주의’라는 말은 스탈린이 1929년 처음으로 만든 말로 알려졌다.

 미국 예외주의는 바티칸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교황 레오 13세(1810~1903)는 미국 가톨릭교회에 이단적인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미국 가톨릭이 미국 전통인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수용한 것은 당시만 해도 위험스러워 보였다.

 미국 공산당·가톨릭뿐만 아니라 미국 예외주의에서는 일반화된 ‘이단적’ 성향이 발견된다. 정치사회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1922~2006)은 미국의 이념이 자유·평등주의·개인주의·포퓰리즘·자유방임주의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예외주의는 세계의 나머지가 보기에 지극히 ‘이단적’인 조합이었다. 이런 예외적인 이념의 조합 덕분에 미국에 사회주의가 발붙일 수 없었다고 설명된다.

 미국 예외주의는 남들도 인정해 줬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이렇게 미국 예외주의를 칭찬했다. “미국인들이나 유럽인들이나 미국이 얼마나 독특한 나라인지를 가끔 망각한다. 미국 외에 사상, 자유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건설된 나라는 없다.”

 독특하다, 다르다는 것은 뛰어나다는 것과 쉽게 연결된다. 뛰어나다면 남들을 지도하는 게 자연스럽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쉽게 발전한다. 문제는, 일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 예외주의가 국내 사회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경제운영,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적인 규범을 무시하는 근거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통뼈’처럼 군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가 가시화될수록 예외주의에 대한 집착이 미국 사회 내부에서 더 두드러지고 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 예외주의 문제가 부각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예외주의를 과연 믿고 있는지 여부다. 2009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예외주의를 믿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오바마의 답은 이랬다. “나는 미국의 예외주의를 믿는다. 영국인들이 영국의 예외주의를 믿고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의 예외주의를 믿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 내 반대파는 그의 답변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오바마가 예외주의의 이단이다.

 이제 미국은 예외주의를 포기하거나, 새로운 예외주의를 발전시켜야 할지 모른다. 미국 예외주의를 걱정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한국 예외주의’를 전망하는 것이다. 미국 예외주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예외주의는 역사와 현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수 미국 학자들은 미국 예외주의가 신화와 환상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상누각 같은 예외주의는 언젠가 문제가 생긴다. 두 번째는 미국 예외주의처럼 강력한 예외주의도 그 출발은 ‘이단적인 생각’에 있다는 것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