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절반의 방어’ 성공한 김진호 골드뱅크 사장

중앙일보

입력

“골드뱅크의 발전을 위해 유신종 사장측과 협력하겠습니다.”

지난 3월24일 오후 서울 초동 골드뱅크 사옥서 열린 골드뱅크 주주총회 후 김진호 골드뱅크 사장(32)은 “소액주주들의 지원에 힘입어 타협에 나설 수 있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로써 인터넷 업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골드뱅크에 대한 최대 주주 릴츠펀드측의 적대적 M&A(기업 인수·합병)는 닷새 만에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아니, 이미경 릴츠 펀드 아시아·태평양 담당 이사를 통해 전 날 “경영은 유신종 이지오스 사장이 맡게 될 것”이라고 밝힌 만큼 릴츠측의 경영권 탈취 기도는 무산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번 인수전은 창업주 겸 최고 경영자도 주주들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이 날 골드뱅크 소액주주 모임 조성배 위원장의 권유로 주총 도중 1시간 30여분 유사장측과 재협상을 가진 김사장은 두 사람이 공동대표를 맡고 양측이 같은 수의 이사를 선임하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그는 이같은 조건에 동의하면 전문경영인을 최고 경영자로 세우고 자신은 비전 디자이너 겸 경영조력자로 물러서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유사장측은 “(김사장이) 퇴진의 의지가 없다”며 수락을 거부했었다.

우호 지분을 포함해 양측이 독자적으로 확보한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엇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표대결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까지 골드뱅크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다 김사장에 의해 축출된 유사장은 “김사장이 전환사채를 해외 펀드에 헐값에 넘겼다는 의혹을 사 국정감사장에 불려 다니는가 하면, 시세 조작 혐의로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코스닥 시장 거품 논쟁에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6월 기자와 만난 김사장은 “보유 지분율이 3.4%(현재는 1.14%)면 경영권에 대한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고 떠 보자 “경영능력을 의심받는다면 물러나야 한다”고 했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주죠, 뭐” 하며 경영권 방어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 20일 유사장이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자 “해외의 거대 자본과 공모해 재벌이 벤처 기업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며 맹렬하게 유사장과 제일제당 이재현 부회장의 친누이인 이미경 이사를 비난했다. 골드뱅크는 60%의 절대 지분을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기업’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지난해 인터뷰 당시 김석기 중앙종금 사장(골드뱅크 지분율 5.71%)이 돈을 대 줬다는 소문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자 그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었다. 이미경 이사의 전 남편이기도 한 김사장은 이번에 李이사와 함께 이사진에서는 배제됐다. 유신종·이미경·김석기 제(諸)씨는 미국 하버드대 동창. 김석기 사장은 유사장을 김진호 사장에게 소개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얽히고 설킨 이런 연고관계는 주총이 끝나고도 사그라들지 않는 대기업 연루설의 불씨가 되고 있다.

기업 인수 등과 관련, 김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서는 그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쟁자인 유사장은 “경영이 방만한 데다 비전이 없다”고 깎아내렸다.‘토종 인터넷 벤처 1호’라는 김사장의 주장과 달리 일부에서는 이미 벤처 기업이 아니라고 ‘낙인’ 찍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는 몰가치적인 평가도 따랐다.

서로 이긴다는 ‘윈-윈’보다는 서로 산다는 ‘상생’(相生)이 마음에 든다는 그가 유사장과 ‘동거’하며 골드뱅크를 초일류 인터넷 기업으로 키워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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