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대표가 ‘알록달록 양말’ 신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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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회색 정장에 갈색 구두를 신은 60대 CEO. 그가 신은 양말엔 빨강·파랑·노랑 줄무늬가 현란하게 들어가 있다. 검은색이나 회색 양말이 아니다. 지난달 21일 만난 최병렬(62·사진) 이마트 대표 얘기다.

 “이거 이마트 양말입니다. 임원들한테도 검은 양말 그만 신으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말을 안 들어요.”

 최 대표가 신은 양말은 그의 작품이다. 그는 평소 양말 매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채색 계열의 양말이 덩그러니 걸려 있어 매장 분위기까지 칙칙해 보였던 까닭이다. ‘대형마트 시장은 이미 포화됐다. 싸고 좋은 물건으론 더 이상 승부를 볼 수 없다’는 게 평소 그의 생각이다. 다른 마트에선 살 수 없는 게 이마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12조6000억원. 그중 1000억원 규모에 불과한 양말에 투자하기로 한 건 그래서다.

 지난해 9월 유명 패션업체에서 명품 스카프와 장갑을 디자인하던 김현정(29)씨를 ‘양말 디자이너’로 채용했다. 양말 제조업체가 대부분 소규모 공장이라 디자이너를 둘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백화점을 다니며 명품업체에서 만든 패션양말을 사 모았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디자인은 명품업체·글로벌 패션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수집했다. 디자인이 나오면 끝나는 게 아니었다. 소규모 공장이 많다 보니 실제 생산이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했다. 공장을 다니며 상황에 맞춰 디자인을 10여 차례 이상 수정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마트표 패션양말은 올 2월부터 전국 80여 개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판매가 시작된 지 3개월여 지났을 무렵 최 대표가 “제품을 직접 봐야겠다. 출시된 걸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보라”고 지시했다. 이마트 창사 이래 처음 열린 ‘양말 품평회’였다. 사실 대표가 품평회를 직접 주관하는 건 드문 일이다. 김현정씨는 “패션양말 매출은 일반 양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대표가 그렇게 신경을 쓰다 보니 전국 대부분 매장에서, 그것도 아주 좋은 자리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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