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처럼 우연히 발견한 신약 “당뇨병 환자 손발저림 사라졌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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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심장 모형을 들고 있는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 심장건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연이라고 강조한다.

“의사도 라포르(rapport·의사와 환자의 심리적 신뢰)를 통해 되레 얻는 게 많다. 요즘 개발 중인 신약과 금연(禁煙)도 라포르 덕분이다.”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51)는 6년 전 성체(골수 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해 심근경색 환자의 죽은 심장근육을 되살리기 위한 임상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에 참여한 40명의 심근경색 환자 중 5명은 당뇨병 합병증의 일종인 신경병증을 함께 앓고 있었다. 신경병증은 통증을 일으킬만한 이렇다할 자극이 없는데도 손발이 저리고 시리며 아픈 것이 증상이다. 당뇨병 환자의 약 5%가 경험하지만 치료약이 없어 그동안 의사도 한숨만 내쉴 뿐인 병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우연한 발견이 이들의 근심을 덜어주고 있다. 말초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투여한 백혈구조혈성장인자(G-CSF)가 신경병증의 증상을 없애준다는 사실을 우연히 밝혀낸 것이다. 동물실험을 마치고 1년 전부터 동아제약과 함께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최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심근경색과 당뇨병을 동시에 앓은 환자들이 손발 저림이 없어졌다고 했다”며 “5명 모두에서 신경병증 증상이 깨끗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신약 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가 6년 전 금연을 결심한 것도 라포르의 힘이다.

 “10년 이상 담배를 피워왔다. 동맥경화의 6가지 요인 가운데 고혈압·고지혈증·비만·운동부족 등이 ‘박격포’라면 흡연은 ‘핵폭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담배는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6년 전 한 환자가 병실을 나서면서 말없이 손에 은단을 쥐어 주었다. 입에서 담배냄새가 나니 피우지 말라는 무서운 ‘경고’였다. 은단 하나가 (나를) 구했다.”

 지금은 금연 전도사로 변신했다. 담배를 피우는 환자를 보면 “자녀가 결혼할 때 아버지 없이 식장에 서게 하겠습니까”라며 충격요법을 쓴다.

 그의 연구실 이름이 특이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 영화 이름에서 따왔나.

 “아니다. 그런 영화가 있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 무슨 뜻인가.

 “사전상의 의미는 ‘우연히 행운을 발견하는 재능, 우연한 발견’이다. 하지만 세렌디피티는 우연도 행운도 아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발견이다.”

 - 세렌디피티의 사례는.

 “1928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가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다. 곰팡이가 핀 실험접시를 그냥 내다버렸다면 위대한 발견은 없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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