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스2'는 인터넷 제국주의 건설의 전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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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주문의 폭주로 서버가 다운돼 결국 행복한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던 소니社. 가전업체였던 소니는 이제 플레이스테이션·플레이스테이션2를 통해 전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을 석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까지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틀 동안 98만 대 팔려 가전사상 신기록

94년 12월 13일 새벽, 도쿄 아키하바라의 몇몇 매장 앞은 수백m에 걸쳐 꼬리에 꼬리를 문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가전업체 소니가 처음으로 내놓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구입하려는 게임 매니어들의 행렬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곧 미국과 유럽에서도 돌풍을 일으켜 지금은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한다. 지난해 12월 2일에는 누계 판매량이 7천만 대를 돌파함으로써 80년대 말∼90년대 초 게임기의 대명사였던 닌텐도의 16비트 게임기 ‘패밀리컴퓨터’의 기록(6천7백만 대)을 앞질렀다. 이제 플레이스테이션은 실질적인 최고의 게임기로 등극하며 소니를 최고의 게임기 업체로 만들었다.

다시 지난 3월 4일 새벽. 아키하바라에선 5년 전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또 다시 벌어졌다. 이번엔 후속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2’(약칭 플스2)를 기다리는 매니어들의 장사진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플레이스테이션2의 기세가 초대 제품을 훨씬 능가한다. 소니가 유통체인 세븐일레븐 등 10여 개 업체와 공동 구축한 온라인 판매 사이트 ‘플레이스테이션 닷컴 재팬’(www.jp.playstation.com)에서 실시한 온라인 예약 판매는 2월 18일 자정에 개시되자마자 1분 동안 60만 건의 액세스가 쇄도했다. 결국 불과 7명의 예약만 접수된 채 서버가 다운됐다. 물론 곧바로 시스템이 정상화돼 약 30만 건의 주문을 받았지만 소니는 5일 후인 23일 주요 조간신문에 일제히 전면 광고로 ‘오와비(사과문)’를 게재해야만 했다.

소니의 발표에 따르면 판매 개시 이틀간(3월 4∼5일) 정확히 98만 대가 팔려 당초 목표 1백만 대에 거의 도달했다. 지금까지 나온 전자제품 중 판매가 시작된 지 며칠 만에, 그것도 한 지역(일본)에서만 1백만 대가 팔린 경우는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올 2월에 내놓은 윈도 2000도 1백만 개가 팔리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고, 그나마 전세계에서 거둔 실적이다.

인기 비결은 펜티엄Ⅲ보다 2.5배 빠른 속도

플레이스테이션2의 인기는 날로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웃돈까지 제시하며 사려는 성급한 구매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플레이스테이션2는 어떤 제품이길래 이렇게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는 것일까.

단순 게임기로만 볼 수 없는 다음 세 가지 특징 때문이다. 가장 주목되는 점은 두뇌부에 해당하는 중앙연산처리장치(CPU)다. ‘이모션 엔진’으로 명명된 이 CPU는 소니가 도시바와 공동으로 최초 개발한 비디오 게임기만을 위한 전용칩. 인텔 펜티엄Ⅲ에 비해 3차원 화상 처리속도가 2.5배나 빠르다. 액션 게임을 예로 들면, 격투 장면의 배경으로 바람에 풀이 날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할 정도다.

둘째, 비디오 테이프를 대체할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를 재생할 수 있는 기능도 게임 매니어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과 구매 충동을 자극한다. 셋째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인터넷 시대상을 반영한 네트워크 접속 기능이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PC의 몇 가지 핵심 기능을 담고 있는 것. 예를 들면 통신망 출입구 역할을 하는 PC 카드 슬롯, 모뎀이나 스캐너 등을 접속할 수 있는 USB (Universal Serial Bus), 디지털 비디오 등과 연결해 영상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i링크 등 3가지의 접점을 갖추고 있다. 확장성면에서도 기존의 게임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인 것.

한마디로 플레이스테이션2는 고성능 게임기에 PC의 핵심 기능을 융합한 제품이다. 소니에서는 ‘신세대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라고까지 부른다. 게임에 DVD, 통신 등 ‘가정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기술을 모두 집약시킨 차세대 가정용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기인 것이다. 성능과 기능이 이런 만큼 소니는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플레이스테이션2를 ‘일개의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소니는 지난해 플레이스테이션2를 공개하면서 ‘e-디스트리뷰션’(e-Distribution) 구상도 함께 발표했다. 이 구상은 고속 케이블TV 네트워크를 통해 콘텐츠를 데이터 그대로 직접 판매하는 것. 장기적으로는 게임뿐 아니라 음악·영화 등의 서비스 사업을 콘텐츠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전자상거래도 함축한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판매에 이어 콘텐츠 서비스를 주된 수익원으로 삼겠다는 계획으로, 인터넷 시대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어떻게 주도할 것인지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5분 만에 2시간 영화 수신

소니는 e-디스트리뷰션을 구체화시켜 내년에는 통신용 PC카드와 50∼1백GB 용량의 외장 타입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 정도 환경을 갖추면 2시간 분량의 영화를 5분 만에 수신할 수 있고, 게임이나 영화·음악 등 콘텐츠를 네트워크를 통해 사고팔 수 있다. 물론 수 년 후에 가능한 일이지만 음반 매장이나 비디오 렌털점 등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스테이션2는 ‘트로이의 목마’처럼, 먼저 게임기로 안방에 침투한 뒤 콘텐츠 서비스 매체인 인터넷 기기로 돌변하는 전략을 내재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소니의 미래를 결정짓는 제품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기가 더 이상 단순 게임기가 아니라 가정용 인터넷 기기로 진화됐음을 보여주는 예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게임기를 가정용 정보화 도구로 내세운 곳은 사실 소니뿐은 아니다. 오히려 소니에 앞서 게임기 전문업체인 세가는 98년 11월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용체계(OS)를 탑재한 네트워크 게임기 ‘드림캐스트’를 출시해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닌텐도 역시 주력 게임기 ‘닌텐도64’의 후속으로 네트워크 접속 게임기 ‘돌핀(가칭)’을 개발해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도 PC 기반의 게임기 ‘X박스’를 내년 가을 상품화한다며 비디오 게임기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비디오 게임기는 시장 규모가 2백억 달러에 육박해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정용 인터넷 기기로까지 자리잡으면 그 시장은 더욱 팽창할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2, 드림캐스트, 돌핀, X박스 등은 궁극적으로 가정용 인터넷 기기의 주력 자리를 다투게 될 것이다.

소니는 올 가을 플레이스테이션2를 미국과 유럽 시장에도 출시해 세계를 무대로 세몰이에 나설 예정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은 판매 대수가 올 연말까지 8천5백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그 후속 기종은 5년 이내에 1억 대까지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플레이스테이션은 하드웨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소프트웨어가 약 2천6백 개나 지원된다.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2는 이들 2천6백개 소프트웨어를 모두 이용할 수 있어 게임기로는 일단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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