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차갑고 도도한 매력, 유리공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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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연꽃처럼 보이지만 실은 완전히 피어오른 튤립의 모양을 본떠 만든 조형물. 김성연 작가.


유리는 여름의 공예다. 판매량도 평소에 비해 2~3배 는다. 속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의 시원한 질감이 물을 연상케 하기 때문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유리는 불 속에서 탄생한다. 유리공예가는 1000도가 넘는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막 나온 젤리 같은 유리를 불거나 불로 녹여 섬세한 모양을 만든다. 공예 중 역사가 가장 짧은 유리는 이제 막 움을 틔운 분야다. 1980년대 중반 겨우 시작했던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서구에서도 공예 분야의 하나로 인정받은 건 60년대 후반이다.

젊은 공예인 유리는 그만큼 다른 공예에 비해 고풍스럽기보다 감각적인 멋을 뽐낸다. 이열치열, 열기 속에서 투명하게 피어나는 유리공예품과 대표적인 작가, 유리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차가운 금속과 영롱한 유리의 만남, 민병덕 작가

꽃을 형상화해 만든 촛대 ‘꽃 피우다’. 강은희 작가.

영롱한 유리 구슬 위에 얹혀진 개구리가 앙증맞은 목걸이 ‘행운의 개구리’. 강은희 작가.

남성적인 철 구조 위에 여성적인 유리가 얹힌 모양의 ‘무사촛대’. 민병덕 작가.

서울 홍익대 앞 주차장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는 간판부터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자그마한 카페 안에 예쁜 유리 그릇과 잔, 금속과 유리가 결합된 조형물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금속과 유리를 접목한 작품을 만드는 민병덕(47) 작가가 연 ‘카페 저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리공예를 널리 알리고 싶어 지난해 카페를 열었다”고 말했다. 유리 컵·잔·인테리어 등을 주문하면 만들어 주기도 한다.

카페 구석에 놓인 조형은 인위적으로 녹을 입힌 철 위에 얹힌 유리가 이룬 모양이 위태롭지만 한편 어울렸다. 작품 속의 금속과 유리는 서로 다른 듯 통한다. 민 작가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금속과 깨지기 쉽고 은은한 유리는 마치 남자와 여자처럼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표면을 굽거나 녹을 입혀 만든 순철이 고풍스러운 반면 유리의 형태와 질감이 현대적인 면도 기묘하게 대칭된다. 녹은 인위적으로 입힌 것이기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에 비해 손에 잘 묻어나지 않는다.

젊은 감각으로 신선한 질감, 강은희 작가

강은희(28) 작가는 램프 워킹(불꽃으로 유리를 녹인 뒤 여러 도구로 형태를 만드는 기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섬세한 작업을 한다. 유리공예작가가 드문 충북 청주 산남동에 공방을 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줄·목걸이 등을 만드는 강의를 열고, 주문한 물건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9~10월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사전 행사로 10~16일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유리공예 체험을 진행한다.

원래 가장 널리 알려진 유리공예 기법은 블로잉(말랑말랑해진 유리를 불어서 형태를 만드는 기법)이다. 유리로 컵·플라스크 등을 만드는데 썼지만, 불어내 모양을 빚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를 잡을 수 있어 작가들도 애용한다. 강 작가는 “블로잉은 형태를 만들기 좋지만 물방울 수준의 작은 모양을 빚으려면 램프 워킹으로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1200도가 넘는 불꽃으로 유리를 녹인 뒤 스테인리스 봉이나 흑연·텅스텐 집게로 섬세한 모양을 잡는다. 말랑한 유리 안에 색깔 유리를 집어넣고 꽃잎처럼 피어나는 문양을 새기기도 하고, 손톱만 한 유리구슬에 1㎜ 크기의 물방울 무늬를 새겨 넣기도 한다.

3500년 전 기법 재현, 김성연 작가

경기도 광주 오포읍에 있는 김성연(62) 작가의 작업실에는 석고틀이 뒹굴었다. 10여 개의 작은 상자 안에는 부스러진 유리알갱이가 색깔·종류별로 담겨 있었다. 그는 유리 조각을 빻아 틀에 넣고 굽는 ‘파테 드 베르’(de verre)라는 기법을 사용한다. 기원전 35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장인들이 쓰던 기법이다. 손이 많이 가고 양산성이 없어 로마 시대를 거치며 이 기법은 다른 것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이후 수백 년 동안 잊혀졌다. 그러다 19세기 말 아르누보(‘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기존 아카데미 위주의 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전위적 예술 사조)를 거치며 다시 복원됐다. 김 작가는 “유리공예는 품이 많이 들어 작품을 만들려면 꼭 조수가 필요하다”며 “보다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고 혼자 하면서도 색다른 질감의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이 기법을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리공예 배우려면

유리공예는 지역 문화센터에서 여름철 특강이 자주 열리는 편. 하지만 연중 가르치는 곳은 대개 유리공예작가의 공방이다. 초보자라면 유리공예 수강료는 한 달 25만~30만원. 램프워킹, 슬럼핑(틀에 넣고 주저앉혀 형태를 만드는 기법), 퓨징(유리판을 녹인 뒤 샌드위치처럼 붙이는 기법) 등을 주로 가르친다. 공방에 따라 일일 체험을 하는 곳도 있는데, 작은 목걸이와 귀고리를 만든다면 1회당 1만원 내외의 비용만 내면 된다.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음료수병으로 접시를 만드는 체험이 인기가 좋아 많은 공방에서 활용하고 있다. 열을 가해 말랑말랑해진 유리병을 납작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들도 재미있어 한다.

연팩토리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031-756-0144
강인경갤러리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031-972-8862
핫저니  서울 불광동. 02-389-9411
유리마루  충북 청주시 산남동. 043-294-6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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