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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경제위기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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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긴급 정상회의가 지난달 21일 그리스 2차 구제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위기를 넘겼다. 위기는 독일의 결심으로 해소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새로운 유럽연합(EU)을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결정 이후 EU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EU의 탄생’이랄 수 있다.

 이번 그리스 위기는 EU의 운명에 관한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큰 경제 및 금융 통합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EU의 출발점이었던 공동시장 구상을 포함해 유로화의 붕괴를 받아들일 것인가. 유럽의 미래에 대한 결정적 선택을 강요받았다. 마지막 순간 EU 경제의 중심축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적절한 타협안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리스에 추가지원을 하는 한편 이자율을 낮추고 채권만기를 연장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적당한 지원 결정으로 유로화의 붕괴라는 최악의 위기는 넘겼지만, 이번 결정은 심각한 정치적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는 이어질 것이며, 이 경우 유럽 각국은 보다 강한 정치적 통합력을 보여야 한다. 그리스 국가채무에 대한 이번 결정은 세 가지 측면에서 향후 유럽 정치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첫째, 앞으로 EU는 두 그룹으로 확실하게 나눠질 것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전방그룹(Vanguard)과 EU이면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후방그룹(Rearguard )이다. 이미 두 그룹은 나눠져 있었지만 지금까진 모호했다. 이제는 보다 실질적으로 확실하게 이해가 갈리게 될 것이다. 전자는 독일과 프랑스로 대표되며, 후자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대표된다. 앞으로 국가채무와 같은 위기를 겪어나가면서 전방그룹이 더욱 결정적으로 유럽의 운명을 좌우해나갈 것이다.

 둘째, 경제적으로 유로존 국가들의 공동운명이 강화되면 될수록 개별 국가의 주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개별국가의 예산편성권은 위축된다. 각국 예산편성은 EU의 감독기구에 의해 유로존 전체의 이익에 맞게 조정될 것이다.

 셋째, 이상의 변화는 정치지도자들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전방그룹을 이끌어가는 독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독일이든 프랑스든 국민 대다수는 주권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다른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새로운 질서에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유럽의 진정한 경제통합을 이루려면 개별 국가들이 유로존의 공통이익을 위해 주권을 포기해야 한다. 이 과정은 EU 관료들이 책상머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로존 국민, 특히 이웃을 위해 돈을 내야 하는 독일인이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결국 정치적인 문제다. 클린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다.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유로존의 통합에 이미 정치운명을 건 셈이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정리=민경원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