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세 얼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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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인도영화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한 ‘세 얼간이’. 엉뚱하고 유쾌한 세 학생의 소동을 통해 경쟁일변도 사회를 비판했다.

수재들의 스트레스는 인도나 한국이나 차이가 없나 보다. 인도영화 ‘세 얼간이’에서 경쟁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문제가 됐던 카이스트 사태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세 얼간이’의 무대는 해마다 40만 명이 지원해 고작 200명이 입학한다는 명문대 ICE다. 총장은 ‘무한경쟁’을 외친다.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거론하며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의 목을 조인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크고 작은 시험을 42번이나 치른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과제 제출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애걸하다 거절당한 학생이 목을 매는 비극도 일어난다.

 이런 ‘인도판 카이스트’에서 벌어지는 성적 공개를 ‘카스트제도냐’며 비판하고 나선 사람은 란초(아미르 칸)다. 란초는 창의력 뛰어나고 못하는 일 없는 수재다. 그는 인도의 최고 공대가 ‘닥치고 외워’ 식의 주입식 교육을 하는 데 저항한다. 기숙사 같은 방을 쓰게 된 파르한(마드하반)은 사진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버지가 두려워 꿈을 숨긴다. 또 다른 룸메이트 라주(셔만 조쉬)는 대기업 취직이 지상목표다. 지참금 없어 노처녀가 된 누나, 전신마비로 앓아 누운 아버지를 부양해야 하는 탓이다. 파르한과 라주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공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란초의 정신에 점차 감화된다.

 ‘세 얼간이’는 할 말 다 하면서도 유쾌하다. 진정한 배움이란 무언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얼마나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지가 청년들의 돌출행동으로 터지는 큰 웃음 속에 녹아 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란초가 주문처럼 외치는 ‘알 이즈 웰’(다 괜찮아, All is well을 인도식으로 발음한 것)을 흥얼거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란초의 낙관주의에 100% 동의하기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게 잘 될 리는 없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10년이 흘러 뜻밖의 인물이 된 란초를 두 친구가 찾아가게 되는 결말도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순진무구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박수를 치게 되는 건 작품 자체의 설득력보다 그런 순도 높은 희망에 간절히 동의하고 싶을 만큼 현실이 빡빡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개봉 과정도 이례적이다.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먼저 접한 네티즌들의 호응이 극장 상영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으로 줄었다. 발리우드의 단골 메뉴인 뮤지컬 장면 3개 중 2개가 삭제된 ‘코리안 버전’이다. 1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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