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 비슷해도 성능 혁신 때 ‘세대’로 구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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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14면

세대(世代·generation)는 원래 생물학적 의미로 출발했다. 한 생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사회학에서는 여성이 성장해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기간이라는 ‘가족세대’의 의미로 쓰인다. 미국의 가족세대는 25.2년(2007년), 영국은 27.4년(2004년)이다. 한국은 2008년 기준으로 30년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문화세대’도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사전 편찬자였던 에밀 리트레가 처음 도입한 개념이다. 프랑스의 68혁명세대, 한국의 386세대 같은 경우가 이에 속한다.

군사·산업 분야에서 세대 나누는 이유

이 같은 세대 구분은 갈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이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을 경우 이를 뭉뚱그려 하나의 범주로 삼기 위해서다. 군사 무기 분야에서 세대 구분이 가장 흔하다. 예를 들어 전차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회전하는 포탑과 강력한 장갑을 두른 차체, 바퀴 대신 무한궤도(캐터필러)를 단 형태가 완성됐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몇 차례의 큰 성능 발전을 이뤘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3세대 전차는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디지털 탄도계산기를 갖춰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1000m 이상 떨어진 적 전차를 명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세대에 따른 성능 차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90년 벌어진 걸프전에서 미국의 3세대 전차인 M1에이브람스는 이라크의 러시아 제2세대 전차인 T-55 등을 일방적으로 부쉈다.

제트 전투기도 비슷한 구분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개발한 메서슈미트 Me-262로 시작된 제트 전투기는 베트남전을 거치며 강력한 레이더로 공대공미사일을 조준해 40~50㎞ 떨어진 적기를 격추할 수 있는 4세대 전투기로 발전했다. 미국의 F-14 톰캣, F-15 이글, F-16 팰컨, 러시아의 미그-29, 수호이-27 등 현대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대부분 4세대다. 미국이 개발한 스텔스기인 F-22 랩터, F-35 라이트닝Ⅱ는 스텔스 기능을 갖춰 5세대로 분류한다. 항공기 역시 세대 간의 능력 차이가 크다. 2006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벌어진 모의 공중전에서 랩터는 단 한 대도 피해를 보지 않고 미국의 주력인 F-15·16·18 전투기 114대를 가상 격추했다.

군사 분야에 이어 제조업에서도 세대 개념을 도입해 쓴다. 66년 첫선을 보인 도요타의 자동차 코롤라는 10세대 모델까지 내놓으며 전 세계에서 3700만 대를 팔았다. 디자인을 바꾸고 신형 엔진을 얹을 때마다 모델명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세대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74년 개발된 독일 폴크스바겐의 골프 역시 현재 6세대까지 2700만 대를 팔았다. 84년 처음 나온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 모델이다. 쏘나타 Ⅱ·Ⅲ와 EF·NF 등을 거쳐 지금 팔리는 YF쏘나타는 6세대에 해당한다.

전자·통신도 세대 구분을 많이 사용하는 분야다. 와이브로·LTE 같은 4세대(4G) 서비스를 시작한 이동통신이 대표적이지만 컴퓨터·액정화면(LCD) 등에서도 세대 구분은 있다. 컴퓨터의 경우 50년대 진공관을 1세대로 부른다. 59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되면서 2세대가 생겼다. 이 트랜지스터 여러 개를 하나의 칩에 모은 집적회로(IC) 방식이 도입된 70년대 컴퓨터를 3세대로 분류하게 됐다. 80년대 이후 고밀도집적회로(LIC)를 활용한 4세대 컴퓨터가 나오면서 현재 우리가 쓰는 PC와 노트북의 시대를 열게 됐다. 컴퓨터의 성능은 2~3년마다 두 배씩 좋아지고 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변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초고밀도집적회로(VLIC)를 활용한 인공지능(AI)이나 분산처리 기술을 5세대로 분류하기도 한다.

LCD 제조업체에서도 원판 유리 크기를 기준으로 세대를 나눈다. 1세대는 가로 360㎜, 세로 270㎜였다. 세로 길이가 전 세대의 가로 길이보다 길어지면 다음 세대로 분류한다. 2세대는 가로 470㎜, 세로 370㎜가 된다. 최근 주력인 8세대 공정은 가로 2500㎜, 세로 2200㎜로 46인치 패널 8장 또는 52인치 6장을 한꺼번에 찍어 낼 수 있다. 차세대 공정으로 통하는 10세대는 가로 3200㎜, 세로 3000㎜ 내외가 된다. LCD 공정의 세대 표기는 매번 가로·세로를 불러 줘야 하는 불편을 피할 수 있어 부품업계와 증권업계 등에서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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