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뛰기는 키로 한다고? 169. 그녀, 상식을 뛰어넘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AFP]


여자 높이뛰기 선수 안토니에타 디 마르티노(33·이탈리아)는 ‘키’로 주목받는 선수다. 높이뛰기 하면 늘씬한 8등신 미녀 선수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는 고정관념을 깨는 선수다. 그의 키는 1m69㎝다.

 키 큰 선수가 즐비한 높이뛰기에 디 마르티노는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이탈리아 대표로 선발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턱걸이 선발이 아니다. 진지하게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탈리아인들도 디 마르티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사실 높이뛰기에서 키는 중요한 요소다. 블라시치를 비롯해 대부분의 출전 선수들이 1m80㎝를 넘는다. 그러나 ‘키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높이뛰기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근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도움닫기부터 문제가 발생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디 마르티노는 7종 경기에서 잔뼈가 굵었을 정도로 근력과 민첩함을 두루 갖췄다. 2006년부터 높이뛰기에 전념해 이듬해 2m 벽을 넘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세계선수권 우승 문턱까지 간 적도 있다.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다. 당시 그는 장신 숲 사이에서 자신의 몸보다 30㎝ 이상 높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2m03㎝의 개인 최고기록을 달성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년 뮌헨 세계선수권에서는 1m99㎝로 아쉽게 2m 벽을 넘지 못하고 4위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좋다. 디 마르티노의 나이는 서른셋. 선수로서는 전성기가 지난 나이지만 최근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2월 실내육상대회에서 2m04㎝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 기록은 실내·외를 통틀어 올해 작성된 기록 중 세계 2위에 해당한다.

 디 마르티노가 넘어야 할 벽은 높이뛰이 최강자 블란카 블라시치(27·크로아티아)다. 체격에서도, 경력에서도 디 마르티노는 사실 블라시치를 넘어서지 못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일단 블라시치는 1m93㎝의 큰 키를 자랑한다. 디 마르티노와 24㎝ 차가 난다. 우승 경력도 화려하다. 그는 오사카(2007년), 뮌헨(2009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대구에서 대회 3연패를 노리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칠 때까지 34개 대회 연속 정상을 차지했으며 개인 최고기록은 2m08㎝다. 그는 24년째 제자리걸음인 세계기록(2m09㎝)을 깰 영순위 후보로 손꼽힌다.

 객관적으로는 블라시치가 우세하다. 그러나 육상계에서는 두 선수의 대결이 흥미진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디 마르티노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비결은 ‘중심’에 있다. 국가대표 높이뛰기 후보를 지도하고 있는 이진택 코치는 “키가 큰 선수들이 일반적으로 많고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선수들도 장점을 극대화시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높이뛰기는 결국 중심 이동을 잘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작은 선수들의 경우 동작을 100% 끌어내는 민첩함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2m에 가까운 블라시치. 1m70㎝가 채 되지 않는 디 마르티노. 그 외 높이뛰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모두 껑충껑충 뛰어 중력을 거부한 채 몸을 가로뉘어 2m의 바를 훌쩍 뛰어넘어갈 것이다. 단 몇㎝가 그들의 메달 색깔을 바꾼다.

가장 최근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디 마르티노는 세금 탈세를 수사하는 경찰(tax police corps)이다. 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 경찰 유니폼을 입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복을 입을 때와 달리 경찰복을 입을 때 더 용감해진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