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5만 명, 연 40% 고금리 빚에 치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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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백모(여·23)씨는 4년 전 대부업체 세 곳에서 560만원을 빌렸다. 한 해 600만원이 넘는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서였다. 아르바이트로 이자를 내고, 졸업 후 취업해 나머지 돈을 갚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에 4000원 남짓 버는 아르바이트로 연 49%의 이자를 감당하긴 무리였다. 졸업 후 바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백씨는 결국 지난 6월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4년간 500만원을 갚았는데도, 남아있는 원리금은 오히려 568만6000원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백씨처럼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은 ‘빚쟁이 대학생’이 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대학생 100명 중 1.5명 꼴이다. 4일 금감원은 대부업체를 이용 중인 대학생이 4만7945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57.2% 늘었다고 밝혔다. 이들이 빌린 돈은 800억원에 가깝다. 양일남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 팀장은 “신용대부 시장의 80~90%를 차지하는 상위 40개 업체만을 조사한 결과여서 업계 전체론 5만 명을 훌쩍 넘길 것”이라며 “일정한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에겐 대부분 법정 상한선인 연 40%대의 고금리가 적용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대출금리 상한선은 지난달 39%로 낮아졌지만 기존대출엔 적용되지 않는다.


 워낙 이자가 높다 보니 대부업체를 이용한 대학생들 상당수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금감원 조사 결과 대학생들이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돈은 118억1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77.5% 늘었다. 연체율도 1년 새 11.8%에서 14.9%로 3.1%포인트 상승했다. 대부업체 평균 연체율 7.2%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700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대부업체 돈을 제때 갚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상길 신용회복위원회 선임조사역은 “이들 대다수는 저축은행 등 1·2금융권에도 빚을 지고 있다”며 “대부업체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다른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고, 이것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출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바로 개인신용정보평가(CB)사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된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회복을 신청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신용불량’ 딱지가 붙으면 어렵게 한 공부도 쓸모가 없어진다. 취업을 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모(24·여)씨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2년 전 400만원을 빌렸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 결국 졸업을 한 학기 미루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원리금을 갚고 있다. 1년 동안 직업을 구해보려 애를 썼지만 이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씨는 “좋은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될까 말까 한데 신용불량자라면 누가 채용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고금리 대출을 이용한 ‘과거’가 현재와 미래까지 묶는 셈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감원은 4일 대부업계에 대학생 대출을 자제하도록 주문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 보호자의 동의를 전제로 대출을 하고, 연체가 발생할 경우 보증인이 아닌 가족들을 독촉하는 불법 행위를 하지 말도록 했다. 대학생 대출 상품을 마치 학자금 대출인 것처럼 광고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안대찬 한국장학재단 홍보팀장은 “대학생들이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데를 알아보지도 않고 고금리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장학재단의 ‘든든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면 연 4.9%의 저금리로 빌릴 수 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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