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름값’ … 왜 국제 유가와 따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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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3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L당 2198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날 서울 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2028.84원으로 전날에 이어 하루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시스]

“휴가 때 승용차로 국내 여행을 할까 했는데 연일 기름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니 부담이 커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박진수·33·직장인)

2일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서울지역 주유소의 휘발유값이 3일 또 올라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유가정보 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3일 서울지역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2028.84원으로 전날보다 0.25원 올랐다. 2008년 7월의 역대 최고가 2027.79원이란 기록이 연일 깨지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뿐 아니다. L당 100원 할인이 끝난 지난달 7일부터 전국의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다. 3일 전국의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값은 L당 1952.96원을 기록했다. 기름값 할인이 끝난 지난달 7일(1919.33원)에 비해 33.63원이 올랐다. 이는 2008년 7월 국제 원유 가격이 정점을 찍었을 때의 기름값(1950.02원)보다도 L당 2.94원 비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국내 기름값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 선으로 2008년 7월의 최고치(140달러)보다 30달러가량 싼데,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값은 어째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 때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듯 “기름값이 묘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환율의 영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2008년 7월 당시에는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을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1050~1060원 선이다. 이 같은 원화 가치 하락은 국내 휘발유값을 L당 40원가량 오르게 하는 요인이다.

 이보다 더 큰 원인은 세금이다. 업계 관계자는 “2008년에는 수입 관세율과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내렸으나 지금은 그런 조치를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국제 유가가 치솟자 정부는 원유에 붙는 수입 관세율을 1%까지 낮췄다가 유가가 안정되자 3%로 되돌렸다. 지금은 3%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영향이 L당 13원 정도 된다. 2008년엔 또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L당 83원 인하했다가 이듬해 1월 원위치했다. 2008년에 비해 지금은 세금에서만 L당 100원을 더 받는 것이다. 이렇게 환율과 세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국제 유가는 종전 최고치에 못 미치는데도 국내 기름값은 최고치를 경신하게 됐다.



 최근 들어 기름값은 다른 지역보다 서울에서 더 많이 올랐다. 다른 광역시·도에선 아직 역대 최고치를 깰 정도로 가격이 오르지 않았지만, 유독 서울만 연일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이 전국의 다른 지역보다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직영) 주유소 수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당 100원 할인 조치가 끝난 후 정유사들이 가격을 올릴 때 직영 주유소부터 가격을 올렸고, 이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직영 주유소가 많은 서울 지역의 기름값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공급가를 한꺼번에 올렸다가 경쟁사에 주유소를 뺏길까봐 자영 주유소에 대해서는 정유사들이 인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주유소(658개)중 직영 주유소는 214개로 32%에 달한다. 반면 전국 1만2917개의 주유소 중 직영 주유소 비율은 10%(1289곳) 선이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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