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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현대 사태를 보는 각계 시각

중앙일보

입력

갈수록 확산되는 현대그룹의 경영권 다툼에 재계가 난감해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주요 그룹 관계자들은 "남의 집안 일에 뭐라 할 수 있겠느냐" 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벌 체제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 시각이 높아지고, 정부가 재벌 개혁을 가속화하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학계.노동계.증권업계 등에서는 "일반 주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오너 일가가 전권을 행사하는 전근대적인 관행의 상징"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는 반응이다.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중 기아자동차.고려산업개발 등을 제외한 대부분 계열사에서 오너 일가 및 관계사 지분율은 50%가 채 안된다.

이와 관련, 대한투자신탁 김창문 상무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기업경영의 극치다. 마치 제왕시대에 일어난 일을 보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주주들과 주주들에 의해 선출된 이사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돼야 하는데 명예회장.그룹회장 등 임의로 만든 직책에 실질적인 권한이 집중돼 있으며, 소액주주들이 소외되는 게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립대 강철규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 후 기업지배구조 개선노력이 있었지만 본질은 시정되지 않았다는 반증" 이라고 말했다.

강교수는 "한국의 재벌기업 지배구조는 총수나 가족이 전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현대그룹 인사 파동이 그 단면을 보여준 것" 이라고 덧붙였다.

서강대 김병주 교수는 "기업확장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표시" 라고 분석한다.

김교수는 "현대그룹도 자연스레 해체의 길을 밟게 될 것" 이라며 "창업주 시대가 가면 재벌도 몇가닥으로 갈라지고 자연 분산.해제의 길을 걷게 된다는 큰 흐름을 보여준 것" 이라고 말했다.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 이사는 "현대그룹이 주주가치 극대화를 내세우며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번 사태로 공신력이 실추된 것 같아 안타깝다" 며 "과연 이번으로 현대의 인사 갈등이 완전히 끝나겠느냐는 시장의 불신이 더 큰 문제" 라고 말했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의 국제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외국계 C증권사 L상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시하는 것은 해당 기업 경영의 예측 가능성" 이라며 "인사가 하루 밤새 뒤집어지는 기업의 정책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느냐" 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27일 오전 집행위원회에서 현대의 최근 인사 파행과 관련,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및 경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한국노총 최대열 대외협력국장은 "현대그룹 인사파동은 한 사람에게 경영권이 집중된 독점재벌이 갖는 폐해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한편 불똥이 재계 전체로 튀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김각중 전경련 회장은 26일 회장단 골프 모임에서 "재계의 최대 현안은 기업간 화합" 이라며 현대그룹 문제에 대해선 "남의 기업 일인 데다 내막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다" 며 언급을 피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한 뒤 논의를 해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병욱 전경련 기업경영팀장은 "현대가 2003년까지 그룹을 5개 분야로 분리, 해체키로 한 만큼 현 시점에서 누가 그룹회장을 맡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고 강조했다.

현대그룹 한 임원은 "열심히 일해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이런 문제 때문" 이라며 "특히 계열사 임직원간 쌓인 앙금을 어떻게 털어내느냐가 관건" 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요 기업 임직원들도 "부의 대물림.밀실경영이란 오명을 씻도록 이번 사태가 조기 진화됐으면 한다" 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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