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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상식 파괴 … “종료 선언” 뒤 1년 올 비 34% 쏟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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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치동 물에 둥둥 서울과 경기지방에 폭우가 쏟아진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거리를 지나던 차량들이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26~27일 연 이틀 중부지방에 물폭탄이 떨어졌다. 장마가 끝난 뒤 비 걱정을 덜었나 싶었던 주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상청은 25일 “27~28일 시간당 30㎜ 이상의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보했다. 26일엔 “26~27일 서울 등에 최고 150㎜ 이상 비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7일 오전 서울 관악구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26~27일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460㎜가 넘었다.

인터넷 게시판, 트위터 등엔 “기상청이 예보가 아니라 실황 중계를 했다” "올 4월 정식 가동에 들어간 수천억원짜리 기상위성은 어디에 썼냐”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기록적인 폭우로 ‘출근 전쟁’에 시달린 강남지역 시민들은 기상청의 ‘동네 예보’ 서비스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기압이 소나기구름 발목 잡아=게릴라성 폭우는 북태평양 고기압에서 유입된 고온다습한 공기가 대기 상층부에서 내려온 차고 건조한 공기와 부닥치면서 일어난다.


 26~27일 서울 등 중부지방 상공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넓은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리는 장마 비구름과 달리, 좁은 지역에 순간적으로 많은 비를 뿌리는 소나기구름이 대거 만들어졌다. 거기다 한반도 북동쪽 사할린 쪽에 자리 잡은 고기압이 비구름의 진로를 막았다. 이 때문에 당초 27일 새벽 강원도 쪽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됐던 비구름이 계속 서울 등 중부지방에 머물며 폭우를 쏟아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상청 김승배 대변인은 “강수량 예측이 틀렸다”는 지적에 대해 “(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자연현상을 정확한 숫자까지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퍼컴퓨터와 기상위성이 없었으면 150㎜ 이상 집중호우조차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장마 대신 우기(雨期)”=기상청은 지난 22일 올해 장마 종료를 선언하는 통계자료를 냈다.

한데 이날 서울에는 공교롭게도 장마가 끝난 후 첫 비가 왔다. 1.5㎜의 소나기였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찔끔찔끔 비가 왔다. 그렇게 5일간 비가 이어진 끝에 26, 27일 폭우가 쏟아졌다. 연속 강수량은 장마철 기록을 이미 추월했다. 장마철 기록이 지난 7월 7일부터 17일까지 11일간 308㎜였지만 이번엔 6일간 501㎜(27일 오후 10시 현재)를 기록 중이다. 서울의 평년 연 강수량인 1450.5㎜의 34%가 넘는 비가 6일간 내린 것이다. 장맛비보다 강한 비가 장마만큼 길게 내리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장마가 끝나고 나면 태풍이 올 때를 제외하곤 큰 비가 오는 경우가 적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장마 종료 후에 더 많은 비가 오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1973~2010년 사이 장마보다 더 많은 비가 온 경우는 총 14번이었다. 이 중 79%(11회)가 90년대 이후에 나왔다. 우리나라 기후가 3~6개월간 지속적으로 비가 오는 동남아국가의 아열대성 기후처럼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상학적으로 장마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기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장마를 단순히 ‘비가 오래, 많이 오는 기간’으로 이해한다. 이 때문에 ‘장마가 끝났다’고 하면 일단 ‘비 걱정’을 접는다. 이번과 같이 장마 뒤끝에 오는 게릴라성 호우에 종종 큰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때문에 기상청 내부에서조차 “오해를 사기 쉬운 장마 대신 우기(雨期) 개념을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우기는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비가 집중적으로 많이 오는 시기를 가리킨다. ‘우기’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장마기간 전후에도 많은 비가 오는 만큼, 아예 여름 전체(6~8월)를 우기로 지정해 집중 관리하자”고 말한다.

기상청 기후예측과 정준석 과장은 이와 관련, “기상학계와 함께 우기 개념 문제를 검토했으나 아직까진 장마란 표현을 존속시키자는 의견이 주류”라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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