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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께 ‘쿵~’ … 흙더미에 쓸려간 발명 대학생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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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7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근 펜션과 주택이 매몰됐다. 119 대원들이 사고 현장에서 부상한 여학생을 응급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새벽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윗샘밭 산사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이날 0시30분쯤 산사태의 위험을 직감하고 가족 3명과 함께 승용차로 피신했던 통나무닭갈비 대표 김형우(58)씨는 멀리 가지도 못한 채 지옥 같은 현장을 목격해야만 했다.

 “살려주세요.”

 산사태가 춘천민박을 덮치자 흙더미에 휩쓸려 나온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쳤다. 김씨는 아들과 함께 무릎까지 빠지는 흙더미를 헤치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많이 다치지 않은 학생 2명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이들을 끌어안고 자신의 승용차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공포와 추위에 부들부들 떨었다. 김씨는 자동차 히터를 최대로 올렸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떨기를 멈추지 않았다.

 김씨가 산사태를 확인한 것은 27일 0시를 조금 넘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던 그는 ‘우르릉 꽝’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 소리를 들은 아들 성철(31)씨가 밖에 나갔다. 집 안으로 들어온 아들로부터 ‘옆집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들은 김씨는 직감으로 ‘산사태가 났다’고 생각했다. 즉시 부인과 아들 등 가족을 승용차에 태운 김씨는 산사태로 길이 막힌 춘천 방향 대신 소양댐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100여m 위 소양강댐관리단 사택 입구 도로가 토사에 매몰돼 더 갈 수 없었다. 그는 차를 되돌렸다. 그러고는 산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나무 숲에 차를 주차시켰다. 이후 몇 분 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차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산사태로 1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춘천민박에는 인하대 발명동아리 ‘아이디어 뱅크’ 회원 35명이 묵고 있었다. 이들은 26일부터 인근 상천초등학교에서 2011 여름방학 발명 캠프를 열고 있었다. 농촌 어린이에게 발명 및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 위한 캠프는 아이디어 뱅크가 발명진흥회 창의재단의 공모에 뽑혀 직접 주관한 것으로 상천초등학교 이외에 인근 4개 학교 학생 40명이 참여했다. 동아리 회원들은 사고가 나기 전날인 26일 개강식과 함께 ▶손가락 화석 ▶만화경 ▶탱탱볼 만들기 등을 지도했다.

 사고 당시 춘천민박 2층에서 잠자던 인하대 이범석(27·컴퓨터공학 4년)씨는 “잠결에 큰 소리에 깨보니 흙더미와 나무가 방안으로 밀려와 있었다”며 “2층에 있던 후배들은 가까스로 나왔으나 1층 후배들은 상당수가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과학도를 꿈꿨던 고 이경철(20·전자전기 1년)씨는 같은 조 동료와 함께 아이디어를 낸 전자 신호등체계가 대학창의발명대회 2차 심사를 통과, 11월까지 제품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산사태로 꿈을 접게 됐다.

정영수 인하대 부총장은 “이 동아리는 특허를 출원하는 등 우수한 동아리였다”며 “발명가를 꿈꿨던 자신들의 꿈은 물론 농촌어린이에게 심어줄 꿈도 무산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찬호·정원엽 기자

◆춘천 산사태 사망자 명단=이경철(20·남·성심병원) 이민성(30·남·강원대병원) 이정희(25·남·성심병원) 최민하(19·여·강원대병원) 김재현(25·남·강원대병원) 성명준(20·남·강원대병원) 신슬기(22·여·강원대병원) 김유라(20·여·강원대병원) 이은영(39·여·성심병원) 최용구(21·남·성심병원) 김유신(20·남·성심병원) 신원미상 남·여(강원대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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