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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의 선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8호 10면

이른 새벽길을 나서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구름안개 뒤덮인 산길이 제법 운치가 있어 걸음걸음이 행복했습니다. 고요한 안개 속에 빠지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대책 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원인은 내 스스로든, 주변에 의해서든,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만한 세월을 살았으면 어떤 것을 쥘 수도 있고, 놓을 수도 있습니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야 어느 정도 참아지지만, 한 세월 두텁게 쌓인 마음은 도대체 털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대략 한 시간쯤 걸으니 노고단의 고원습지에 닿았습니다. 습지 주변은 원추리 군락지로 유명합니다. 시기가 일러 원추리 꽃은 보지 못했지만 곳곳에 여름 꽃들이 한창입니다. 비비추, 노루오줌, 이질풀, 기린초, 꿀풀, 뱀무, 술패랭이, 산수국. 지리터리풀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 으뜸은 ‘지리터리풀’이었습니다. ‘지리터리풀’은 ‘터리풀’ 일종으로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특산식물입니다. 길목마다 자리 잡은 짙은 자줏빛 붉은색 꽃이 모든 여름풀을 압도합니다. 먼지털이를 닮아 이름 붙은, 우아하고 고상한 지리터리풀 꽃으로 잡다한 마음을 털어냈으면 합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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