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감추기·몸집불리기 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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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투자자들과 컨설팅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올해 인터넷 사업의 가장 큰 화두는 전략적 제휴와 인수 합병이다. 시장 선점과 리더십의 확보, 상호 보완적인 기술·제품의 결합, 신규 사업 진출, 취약성 보완 등을 위해 합병과 제휴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간 인수·합병 중 상당수가 실패로 끝나거나 별 실익이 없는 상태로 유지되기도 한다. 컴팩의 DEC 인수가 그렇고, 3COM의 US로보틱스 인수 역시 그다지 실효가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AOL-타임워너 합병의 경우도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M&A와 전략적 제휴의 귀재로 알려진 시스코사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스코는 6년 동안 40개의 회사를 인수 합병했다. 시스코의 인수 합병 전략은 자사의 연구개발 능력을 밖으로 확대해 외부의 연구개발을 아웃소싱한다는 개념이다. 제품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을 개발할 인재도 미리 유치한다는 측면이다.

이 점은 마이크로소프트사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활발한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는데, 한 번은 뛰어난 엔지니어 4명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를 인수한 적도 있었다.

인수 합병 이후 40~80%의 최고 경영진과 핵심 엔지니어가 2년 내에 회사를 떠난다는 통계는 대부분의 인수합병이 왜 실패하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다. 인력에 대한 정책 없이 단순히 약점 감추기나 몸집불리기를 위해 시도되는 인수 합병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있는 것이다.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M&A를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들은 우선 비전의 공유다. 서로 다른 비전을 갖고, 서로 다른 미션을 갖는 회사가 단지 합치기만 하면 잘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서로의 역할 분담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장, 기술, 제품에서의 충돌과 의사 결정의 지연만 초래할 것이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문화의 유사성이 높고 화학적 결합이 용이해야 한다.

이는 특히 주주, 사업파트너를 모두 고려에 넣은 상태에서 검토돼야 한다. 이것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합병 이후에도 직원들은 전 회사의 이름을 들먹거릴 것이고, 현재 통합된 회사보다는 과거 회사에 소속감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최고 경영층과 톱 엔지니어의 지속적인 활동이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에 인수 합병 후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개인들의 목표와 일치할 수 있는가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인수하는 것은 사람이지 절대로 제품이나 기술만이 아닌 것이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 기업간의 인수 합병이 작년부터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그 효과에 대해 논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다만 한글과컴퓨터의 하늘사랑 인수는 그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아이에스아이와 사이버게이트인터내셔날이 합병한 시큐어소프트의 경우는 시장에서의 위치 확대와 제품 강화에는 득을 보았으나 비전과 경영진의 화학적 통합에는 실패한 케이스다.

결국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와 핵심 엔지니어가 회사를 떠나는 길을 택했다.

두루넷의 나우콤 인수는 문화와 화학적 결합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요소를 갖고 있는 딜이다. 이 인수는 결국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조직의 구조조정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수 합병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기업 성장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외부 인력과 문화를 공유하고 소화할 수 있는 개방적인 기업 문화가 필수적이다. 출신 학교·지역이나 출신 기업들의 단일성이 너무 강한 회사의 경우는 이러한 외부 문화를 원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순혈주의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한상기 벤처포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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