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매몰 인부, 끝내 숨져 … 함께 매몰된 다른 인부 시신도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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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이어진 구조작업 끝에 21일 새벽 구조된 인부 이형철씨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씨는 이송 뒤 한 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다. [뉴시스]

21일 오전 6시40분 서울 천호동 상가 건물 붕괴 현장. 100여 명의 시민들 사이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전날 매몰된 인부 이형철(58)씨가 16시간 만에 구조된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병원으로 후송된 지 1시간여 만인 오전 7시44분 이씨는 과다출혈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씨의 유족들과 이씨 구조를 위해 16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던 구조대원들 사이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씨의 생존이 확인된 건 20일 오후 7시40분. 구조대원 24명은 50㎝의 콘크리트 틈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들어가 손으로 흙을 파내며 조금씩 장애물을 제거해 나갔다. 붕괴가 우려돼 기계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장에는 8명의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재웅(30) 강동소방서 구조대원은 “오후 10시쯤 이씨의 손을 확보했습니다. 살 거라는 희망에 구조대원 모두 ‘파이팅’을 외쳤죠”라고 떠올렸다. 그러나 발견된 이씨의 두 다리는 보(기둥)에 깔린 상태였다. 하 대원은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료진 얘길 들었을 땐 절망했다”고 말했다. 긴급회의 결과 다리 절단 없이 이씨를 살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 즉각 보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21일 오전 6시, 밤샘 작업 끝에 이씨의 왼쪽 다리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씨는 그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하 대원은 “이씨가 의식을 잃기 직전 ‘오른쪽 다리를 잘라서라도 살려달라’고 하더군요. 결국 의료진이 투입돼 오른쪽 다리를 절제했습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서 다리 절제 수술을 집도한 현윤석 강동성심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당시 뼈는 이미 절단된 상태여서 근육과 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했다”며 “매몰자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유족들은 인천 연수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이씨와 함께 매몰된 것으로 확인된 인부 김성태(45)씨는 이날 오후 3시30분쯤 탐지견에 의해 위치가 파악돼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오후 9시35분 숨진 채 발견됐다.

남형석 기자, 이보배(중앙대 신방과)·현혜란 인턴기자(연세대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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