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금리·수수료, 이달 내 바로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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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발전을 얘기하기 전에 기본부터 다져라.”

 “대주주가 있는 2금융권을 집중 감시하겠다.”

 권혁세(사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금융권을 긴장시키는 발언을 부쩍 늘리고 있다. 윤리경영과 소비자 보호, 서민금융 활성화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금융권의 행태를 지적하는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다.

 권 원장은 19일 금융연구원 주최로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7월 중 금융회사의 수수료와 금리부과 체계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철폐·시정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의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 금리와 수수료를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불완전 판매와 ‘꺾기(구속성 예금)’ 등 부당영업 행위 징후가 나타나면 즉시 현장 검사에 착수하고, 위규 사실이 적발되면 행위자는 물론 감독자와 경영진에 대해서도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업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선 발언 강도가 더 높았다. 권 원장은 은행·보험 등 업권별 협회장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이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삼성·LG 등 대기업들은 진작부터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있다”며 “금융회사도 가시적인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보험·증권·저축은행 등 대주주가 있는 금융회사의 경우 부당한 경영간섭이나 부당거래행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또 “은행의 과도한 금리나 수수료 체계, 후순위채와 주식워런트증권(ELW) 불완전 판매 등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며 “7월 중 대대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서민대책과 관련해선 “서민지원을 위해 희망홀씨대출 목표액을 영업이익의 10%에서 15%로 올리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 원장의 발언 강도가 높아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급격히 싸늘해진 금감원에 대한 여론이 첫째다. 금감원은 최근 몇 달간 “업계와 밀착해 본연의 임무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금융감독과 소비자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정공법밖에 없다”는 게 권 원장의 생각이라고 금감원 관계자는 전했다.

둘째는 업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권 원장은 취임 전후 “금융회사를 키워 해외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강조했다. 하지만 서민대책 등 정부 정책을 현장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금융사의 내공과 성의 부족에 적잖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요즘엔 “금융사들이 앉아서 손쉽게 돈을 버는 구조에 안주해 스스로 발전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자주 내비친다는 것이다.

 금융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권 원장의 압박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사의 고위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감독당국이 ‘감시자’라기보다 ‘보호자’란 생각을 해온 게 사실”이라며 “금감원이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하는 건 좋지만 관치가 예전보다 더 심해지고 노골화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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