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닷컴’을 둘러싼 분쟁 사례

중앙일보

입력

‘Whitehouse.com’부터 ‘19450815.com’까지

도메인네임은 숫자로 돼 있는 인터넷 주소(IP Adress;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각 컴퓨터가 갖는 고유한 번호)를 외우기 쉽도록 문자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전자상거래가 점차 활성화돼 도메인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자 이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뜯어내려는 한탕주의식 사고방식을 지닌 도메인 헌터(스쿼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자신이 등록한 도메인네임을 이용해 인터넷 벤처사업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금전적 실리를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자사의 도메인네임을 선점당한 기업은 이들 도메인 헌터들에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막대한 액수의 돈을 지불하고 되찾아오거나 다른 도메인네임을 쓸 수밖에 없다. 또 적당한 선에서 양자가 협상을 통해 해결되지 않아 법정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이런 갈등은 특히 기업명과 ‘닷컴’이 조합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그만큼 ‘닷컴’이 다른 도메인네임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닷컴’(www.hyundai.com)은 그 대표적 사례다. 캐나다의 한 네티즌이 ‘현대닷컴’을 선점하자 뒤늦게 이를 안 현대그룹은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측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인 1억∼2억원을 요구받자 중도에서 포기해 버렸다. 도저히 현대로부터 큰 돈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던지 그 캐나다인은 결국 거액을 포기하고 단돈 300달러에 팔겠다고 제의해 현대그룹이 자사의 도메인네임을 찾아온 경우다.

또 미국의 백악관(whitehouse)과 관련한 분쟁도 유명하다. Dan Parisi라는 사람이 등록한 ‘화이트하우스닷컴’(whitehouse.com)이라는 포르노사이트가 실제 백악관 홈페이지 주소(whitehouse.gov)와 비슷해 벌어진 분쟁이다(Paris는 네티즌들의 착각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더 많이 접속하도록 의도했음이 분명하다).

‘닷컴’에 익숙해 있는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백악관에 접속하려다 유료 포르노사이트로 접속해 들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자 백악관측은 ‘백악관’(white)이라는 명칭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오랜 정책에 위반된다며 적절한 조치를 강구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곧 네티즌들 사이에 팽팽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Paris는, 미국의 판례에 의하면 ‘The White Hous’는 상표권이 주어진 이름이 아니고, 더구나 자신의 사이트는 명백한 주의문(disclaimer)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그의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져 현재까지도 ‘화이트하우스닷컴’에 접속해 들어가보면 낯뜨거운 포르노 사이트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도메인을 둘러싼 분쟁은 비단 경제적 실리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의 관영 신화사 통신이 대만의 국가명인 ‘타이완닷컴’(taiwan.com)을 선점해버린 사건은 신념이나 주의·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닷컴’이 이용된 대표적 사례다.

즉, ‘하나의 중국’을 줄기차게 표방해온 중국 정부의 의지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도 그대로 표출된 것이다. 대만 정부는 당연히 이를 돌려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중국측은 이를 묵살했다. 국내 사례로는 ‘독도닷컴’(tokto.com)을 들 수 있다. 인터넷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황의석씨는 ‘독도닷컴’과 함께 독도의 일본식 표기인 ‘다케시마닷컴’(takeshima)까지 등록해 적어도 사이버공간에서만큼은 일본의 독도 자국령 주장을 사전에 봉쇄해버린 바 있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8·15 도메인’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간의 분쟁이 발생해 3국 네티즌들 사이에 미묘한 파장이 일기도 했다. 문제의 도메인 ‘www.19450815. com’의 소유자는 한국에 유학온 중국인 K씨. 아시아 지역 무역정보 취급 사이트인 ‘채널 아시안’을 준비중인 그는 8월15일이 한·일 양국민들에게 의미있는 날이라는 점에 착안 지난해 11월 도메인 등록을 마쳤다.

분쟁의 발단은 일본의 한 아시아 민간외교단체가 K씨로부터 도메인을 넘겨받기 위해 처음에는 3억원을 제시하다 최근 5억원까지 올린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8·15’ 사이트를 일본인에게 파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항의성 메일을 K씨에게 잇따라 보냈다.

한편 개인사업을 하는 조모씨는 지난해 12월 또 다른 광복절 도메인인 ‘www.19450815.com. kr’을 서둘러 등록했다. 아울러 그는 광복절 사이트를 일본에 팔려는 K씨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중국의 정부수립일인 1949년 10월1일을 상징하는 도메인 ‘19491001.com’ ‘19491001.net’ ‘19491001.org’ 등을 한꺼번에 등록시켜 맞대응해 결국 일본 민간단체의 인수 계획을 무산시킨 사건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