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에셸런 이용 산업정보 빼낸 적 없다' 주장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위성감청망인 ''에셸런''을 통해 유럽의 상업용 전화통화나 팩스, e-메일 등을 감청, 이들 첨단 산업정보를 빼내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들에 제공했을까.

미 정부가 ''에셸런''을 통해 유럽의 중요 산업정보를 빼냈을 것이라는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최근 이를 정면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 국가안보국(NSA)은 산업정보를 빼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단호한 부인은 지난 5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에셸런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강력한 비난공세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냉전시대 군사용으로 개발된 감청기술이 상업적 목적으로 전환돼 우방국들을 노리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특히 미국이 유럽의 산업정보를 빼내 미국 기업들에 흘렸을 것이라는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 다만 이를 공식 이슈화하지 않는 것은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유럽의회는 미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들이 미국 업체들로 넘어가 외국경쟁사들을 물리치고 계약을 따내는데 일조했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이를테면 브라질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항공기 수주 계약에서 미 정보기관들이 감청을 통해 프랑스측이 수뢰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그후 양국은 맥도널드-더글러스등 미국 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각종 감청기구와 슈퍼컴퓨터를 동원, 일상적인 전화 대화나 펙스 등을 감청한 것은 NSA였다. 문제의 심각성은 NSA가 수집한 첨단 정보들이 중요한 계약건을 놓고 유럽기업들과 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기업들에 고스란히 넘겨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측이 기밀 정보 유용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 에셸런 본부는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정보기관에 대한 외국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금주 기자회견은 미 국무부의 강력한 부인에 허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울시는 NSA 자매기관인 CIA가 경제정보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함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의혹을 부풀리는 결과를 자초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NSA와 국가정찰국(NRO) 등 정보기관들이 군사및 정치적인 적(적)들에 대해서만 감청을 실시했다고 주장해왔다. 울시는 CIA가 수집하는 경제정보의 95% 가량은 신문지상이나 기업자료 등 ''공개된 자료''를 통해 수집하는 것이고, 5% 정도만 비밀리에 수집하는 중요한 기밀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통신설비와 정찰위성 등 광범위한 정보망을 통해 기밀을 수집한다"고 말했다. 울시가 말한 이 통신설비는 미 국무부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 바로 NSA가 이용하는 정보수집 루트를 의미하는 것이다.

울시는 그러나 기밀 수집은 리비아 이란 등 불량국가들에 대한 제재 유지 기상관측과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슈퍼컴퓨터 등 첨단장비 감시 미국 기업들에 대한 외국 업체들의 불법 뇌물 제공 등 3가지 경우에 제한된다고 밝혔다.

울시의 말처럼 미 정보기관이 수집한 산업정보가 미국 기업들에 직접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정보는 기밀 정보수집활동을 통해 제공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무기 확산과 수뢰, 제재조치 등 감시를 해외에 있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다면 최소한 CIA와 관련이 있는 미국 기업인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대가로 제공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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