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대한생명 헐값 매각’ 논란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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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참 지루한 공방이었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논란. 2003년 감사원 감사, 2006년 대법원 판결, 2008년 국제상사중재위원회 소송에 이어 또다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한 지 9년 만이다.

 결론은 예상했던 대로다. “매각 과정에서 업무 처리가 일부 미흡했지만 매각 전체가 문제될 건 없다.” 다시 말해 매각을 무효로 돌릴 일은 없다는 뜻이다. 한화 측은 즉각 “그간의 논쟁이 종결됐다”며 환영했다.

 이번 발표로 한화는 인수자격 관련 특혜 논란에선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됐다. 감사원은 한화가 기존 보험사를 인수하는 데 법적 제한이 없었다고 확인해줬다. 한화 계열사의 분식회계 적발도 대한생명 인수와는 상관없다고 봤다.

 그런데 ‘헐값 매각’ 부분은 애매하다. 일단 감사원은 “헐값 매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한화 쪽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도 한화가 대한생명의 실제 기업가치보다 8000억원가량 싸게 샀다고 판단했다. 대한생명의 부동산 가치 4645억원이 누락됐고, 63빌딩 가격은 감정평가액보다 500억원 낮게 매겨졌으며 지분 51%를 가져가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헐값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싸게 대한생명을 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는 얘기다. 당시 한화는 3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한생명을 8236억원에 샀다.

 물론 애초 정부가 작정하고 싸게 판 것은 아닐 것이다. 팔 때는 급한 김에 제값을 받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따져보니 싸게 판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땐 결국 ‘구매자가 물건을 싸게 잘 샀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3조5000억원의 세금을 집어넣은 국민들로선 아쉬움이 남는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제19조는 국민 세금이 들어간 금융회사를 되팔 때 ‘적정 가격에 매각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적정 가격’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가격이란 결국 사고파는 쪽의 결정인 데다 9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그러나 한화의 인수 가격과 적정 가격 사이에 약 8000억원의 간극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한화의 몫이다. 한화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한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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