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플랫폼 만들면 복지 저절로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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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재술
딜로이트 한국총괄대표

한창 달아오른 복지 논쟁이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의 초점은 한정된 예산으로 어느 수준까지 무상복지가 가능한지에 모아졌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복지예산의 효율성과 복지투자의 선순환 효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금이 누수 없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혜자가 어느 시점에서 자립해 ‘복지 대상’에서 벗어나는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다른 한편으론, 복지예산 투입을 비즈니스 기회와 연계시켜 경제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효용이 높은 수혜대상에게 자원이 배분돼야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원 대상 선정의 공정성이 문제인 데다, 복지정책이 사회시스템이 아닌 최종 전달서비스 자체에 매몰되면서 서비스 품질 문제와 사회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는 복지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즈니스에서도 유사한 난제가 존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것인가가 고민거리다. 갈수록 고객 니즈가 복잡·다양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이런 점에서 구글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구글은 초창기부터 자신들의 서비스를 팔기보다는 다른 기업의 서비스 사업화를 지원하는 장(場)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구글맵이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사업모델은 많은 이의 의구심을 자아냈지만 머지않아 수많은 기업이 구글의 플랫폼 위에 자리 잡으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 냈다. 이른바 플랫폼 전략이다.

 플랫폼 전략은 기업에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우선 플랫폼에 자생하는 기업이 많을수록 충족되는 고객의 니즈가 커진다. 플랫폼상에서의 기업 간 경쟁은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시장성이 커지면서 몰려드는 고객과 기업들은 플랫폼 생태계를 더욱 강화한다. 구글의 성장 과정이 이랬다.

 복지정책 역시 개별 서비스 차원을 벗어나 플랫폼 전략에 기초한 ‘스마트복지(Smart Welfare)’를 고민할 때다. 정부의 역할은 최종 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복지시스템이 구동되는 기반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한 복지 플랫폼은 교육·의료·일(work)·결제 등이다.

 원격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스마트교육을 실현하고, 스마트의료를 통해 전국 어디서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워크를 통해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근무문화를 만들어 내고, 모바일 등 신기술을 이용해 자유롭게 자금과 정보를 교환하는 스마트결제를 구현하는 식이다.

 이런 서비스들은 전국 단위의 기반 플랫폼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주도적 투자가 어려워 뛰어난 사업성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가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국가가 플랫폼에 투자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민간은 플랫폼 기반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국가는 플랫폼을 사용하는 기업이 일정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도록 한다. 정보통신기반 서비스의 성격상 수혜 대상이 추가되더라도 단위비용 상승이 적고, 전산 관리가 가능해 수혜자-비수혜자 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복지자원이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기업-산업-국가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속적 발전 기반이 된다는 점은 스마트복지의 최대 이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이끄는 리더십의 문제”라고 갈파한 바 있다. 어찌 보면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도 돈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모두가 힘을 모아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하고, 정부가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나랏돈이 스마트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술 딜로이트 한국총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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