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숨은 화제작] 일본 영화 '엑기(驛)'

중앙일보

입력

이창동 감독의 영화 '초록 물고기' 나 '박하사탕' 에서 삶은 기차에 비유된다.

주어진 선로를 밟으며 힘겹게 달려가다 보면 자신의 꿈조차 잊어버리게 되고, 기차에서 떨어져 나가려면 낙오자로 전락해야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인생을 달리면서도 속으로는 탈선을 꿈꾸는 것이다.

'박하사탕' 에서 되돌리는 기찻길이 더욱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한 삶의 아름다움이 출발역에는 가득 피어있는 까닭이다.

일본 영화 '엑기(驛)' 에서도 인생을 기차에 빗대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 삶이 갈리는 지점이 역으로 상징된다.

'초록 물고기' 에서처럼 정해진 철로를 달려가는 삶의 피폐함을 그리기보다는 무수한 우연이 엇갈리는 교차점과 그 위의 쓸쓸함을 삿포로의 설경과 함께 담고 있다.

얼마전 개봉한 '철도원' 의 후루야다 야스오 감독과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쿠라 겐이 호흡을 맞춘 1981년작. 제27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감독.남우주연.촬영.녹음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일본 개봉 당시 2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이기도 하다.

주인공 미카미 에이지는 훗카이도 경찰본부의 형사이자 사격의 명수다. 바쁜 업무로 인해 결국 부인과 이혼하고 사랑하는 아들과도 헤어지게 된다.

그를 위로해 주던 선배 형사마저 검문 도중 총에 맞아 살해되자 외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후 인질사건에서 범인을 저격하고 인질범의 어머니로부터 '살인자' 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 미카미는 설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곳의 선술집에서 나오코라는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게 끌린다. 배경에 깔리는 일본 대중가요 엔카의 가사가 영화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