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밥그릇 지키기 날 새우는 금융감독혁신 TF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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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계기로 구성된 금융감독혁신 TF(태스크포스)팀 안에서 파열음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정상적인 논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육동한 총리실 국무차장)고 설명하지만 민간위원들 얘기는 좀 다르다. 한 민간위원은 “정부의 들러리가 될 수 없다”며 사퇴했고, 민간을 대표한 김준경 공동위원장도 지난주 “사실상 논의는 끝났다. (필요하면) 사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TF에 참가한 복수의 위원들 말을 종합하면 균열은 지난달 26일 8차 회의 후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겼다. 위원들 간에 이견이 여전한 상태에서 정부가 서둘러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 과정에서 김준경 위원장이 청와대 배석을 요청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고 한다. 이후 위원들의 입을 통해 TF 내 갈등 상황이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에서 민간위원들이 보여준 행동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몇몇 민간위원의 의견을 전체 의견인 양 포장하고, 갈등을 증폭시켜 TF팀을 사실상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점이 그렇다. 그럼에도 더 큰 책임은 민간위원들의 의견은 그냥 ‘참고 사항’으로 간주하며 자신들의 뜻대로 보고서 작성을 밀어붙이려 했던 정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가 ‘감독’의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정책’의 실패도 원인이 됐다는 민간위원들의 의견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금융감독원 권한 분산 차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신설하자는 안이 금융위 권한만 강화해주는 것 아니냐는 민간위원들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더구나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를 금융위 산하로 가져오겠다는 내용을 TF팀의 2안에 넣어 발표하자고 한 것은 그런 오해를 증폭시킬 만한 일이다. 일부 민간위원은 이런 일들이 “금감원 개혁을 명분으로 금융당국이 자신들 권한만 넓히려 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 관계자들은 “민간위원들이 금감원 편만 들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민·관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지난달 29'일로 TF팀의 논의는 중단됐고 장외 설전만 오가고 있다.

 최종보고서 발간은 결국 8월 말로 연기됐다. 다음달 초 국정조사를 지켜본 뒤 발표하는 게 낫겠다고 정부가 판단해서다. 미루고 미룬 끝에 밥그릇 다툼을 봉합하는 수준의 대책만 나올까 걱정이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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