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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자투리펀드 연내 구조조정 … 황건호의 뚝심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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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황건호(사진) 금융투자협회장이 2009년 협회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눈여겨본 곳은 펀드업계였다. 펀드 개수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의 펀드 시장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하지만 펀드당 운용 규모는 미국의 2% 수준으로 하위권이었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펀드당 평균 총자산은 3100만 달러로 미국(2010년 기준, 15억5900만 달러)·룩셈부르크(2억6900만 달러)·프랑스(2억800만 달러)·브라질(1억7500만 달러) 등에 한참 못 미친다.

 황 회장은 이런 소규모 펀드의 난립이 우리나라 자산운용업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연구 끝에 펀드 시장을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금투협이 설정액 50억원 미만의 이른바 ‘자투리 펀드’를 연내에 정리하기로 한 배경이다.

 황 회장은 “자투리 펀드가 투자자의 상품 선택을 위한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며 “운용사 입장에서도 분산투자나 효율적인 운용을 어렵게 만들어 거래비용이 상승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금투협과 업계는 5일 소규모 펀드 정리 계획을 마련해 연말까지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리 대상은 설정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설정액이 50억원 미만이거나 설정 1년 이후 1개월 이상 계속 50억원 미만인 공모·추가형 펀드(공모펀드 가운데 추가 납입이 가능한 펀드)다.

이런 펀드는 총 1386개로 전체 공모·추가형 펀드(5월 말 3318개)의 41.8%를 차지한다. 협회와 업계는 우선 644개를 올 연말까지 없앨 계획이다. 업계에선 해당 펀드에 가입한 고객 수가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리 방법은 ‘임의 해지’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가입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자산운용사가 자체 판단에 따라 해지하는 방식이다. 또 수익자 총회(펀드 가입자들의 동의 절차) 없이도 유사한 소규모 펀드를 통합해 하나의 대형펀드로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금투협 김철배 집합투자본부장은 “판매사와 운용사에 자투리 펀드의 문제점을 알리고 협조를 얻었다”면서 “내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줄여갈 계획이며, 필요한 제도개선은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식형 펀드 환매가 이어져 수익이 줄고 있는 마당에 운용사와 판매사들이 굳이 나서 펀드를 정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펀드 상품을 선택한 투자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대우채·카드채 사태로 소송이 걸려 있는 펀드들에 대한 청산 절차를 밟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임의 해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돈을 고객의 계좌에 입금하기 위해선 투자자들을 일일이 접촉해야 한다”며 “연락처가 바뀐 투자자도 적지 않은 데다 한정된 인원으로 그 많은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투자자와의 분쟁 발생 소지도 여전하다. 마이너스 수익이 난 펀드의 플러스 전환을 기다려온 고객들 입장에선 반(半)강제적인 펀드 해지 절차에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더욱이 고객과의 접촉은 판매사들이 담당하게 되는데, 해당 고객이 영업에 기여도가 큰 고액 자산가인 경우 판매사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금융소비자연맹 이성구 회장은 “기존에 체결된 계약을 소급해 제약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금융 계약에 대한 나쁜 선례를 만들어 우리나라 금융질서 전반을 어지럽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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