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팀 1만 개에 동호인 25만, 야구장은 전국에 140개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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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20면

주말 골프장 부킹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야구 동호인들이 모여 경기를 벌일 수 있는 야구장을 구하는 일이다. “훈련보다 야구장 섭외하는 게 더 힘들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골프장 주말 부킹보다 어려운 야구장 예약 전쟁

최근 치솟는 프로야구의 인기에 힘입어 사회인 야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한 아마추어·생활체육 야구팀은 5600개(선수 12만4457명)를 넘겼고, 미등록팀을 포함하면 1만 개(선수 25만 명)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들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경기장은 전국에 140개뿐이다. 수치상 72개 팀이 한 개의 야구장을 함께 쓰고 있는 셈이다.

사회인 야구팀은 매년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야구장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동안 57개가 더 생겼을 뿐이다. 같은 기간 축구장은 510개, 골프장은 103개가 늘었다. 현재 건립 중인 야구장은 대구시 수성구와 경남 의령 두 곳뿐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주말 야구장 사용 경쟁률은 수십 대 1까지 올라가고, 야구장 대여료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사설 야구장(한 경기 평균 20만~30만원)보다 저렴한 공공체육시설 야구장은 추첨을 통해 사용권을 줘야 뒷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가 됐다. 추첨에 당첨된 동호회가 구장 사용권을 현금을 받고 파는 불법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 야구장 사용권이 사설 야구장보다 비싸지는 경우도 있다. 부산 사회인 야구단 ‘캐리어스’의 이정재(31) 총무는 구장 섭외를 ‘전쟁’에 빗대며 “운동장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이 휴가를 내 발품을 팔고 있다. 그래도 구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구장 대여료뿐 아니라 리그 참가비도 상당한 부담이다. 대부분의 구장이 1년 단위로 리그 운영단체와 대여 계약을 하기 때문에 사회인 야구팀은 매년 약 300만원을 내고 정식 리그에 가입해야 한다. 정식 리그에 가입하지 않고 야구장을 이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리그 운영자들 역시 구장을 섭외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연말이면 야구장을 확보하기 위해 리그 운영자들끼리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다음 해 구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해당 리그의 팀들은 야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 팀은 3~4개 리그에 중복 가입하기도 한다.

야구장이 다른 종목 시설에 비해 찬밥 신세임은 공공체육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전국 140개 야구장 중 공공체육시설은 77개뿐이고 절반에 가까운 63개가 사설 야구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1년 공공체육시설 현황’에 따르면 전국 공공체육시설 1만5179개 중 1만1533개는 야구가 불가능한 간이운동장이고, 이를 제외한 3626개 체육시설 중 야구장은 2.1%(77개)에 불과하다. 축구장(607개·16.1%)과 비교하면 8분의 1 수준이고, 골프장(55개·1.5%)과 비슷하다. 사설 골프장 223개를 더하면 전국의 골프장 수는 278개로 야구장(140개)의 두 배다. 야구와 골프를 모두 즐기는 사회인 야구팀 ‘폭투’의 이만기(41)씨는 “야구장 섭외가 골프장 부킹보다 10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을 더 짓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사설 야구장 건립은 쉽지 않다. 법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축구장·야구장을 지어서 임대사업을 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권오성 비바스포츠 대표는 “우리나라는 축구장과 야구장을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이 건립해 공급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야구장 건립 허가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기존 사설 야구장들도 임대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야구장 옆에 숙박시설이나 식당을 지어 편법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야구장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설 야구장 건립과 임대사업을 제도적으로 풀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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